달고아삭한 우리 배,
신품종·신기술로
소비자와 만나다

글 ㅣ 김주희자료 ㅣ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배는 동서양의 차이가 매우 큰 과일 중 하나다.
사각사각하고 과즙이 많은 동양배와는 달리 서양배는 아삭함 없이 후숙해 물러진 복숭아처럼 먹는 과일로 처음 먹어 본 사람은 그 차이에 놀라곤 한다.
삼국시대부터 사랑받아 관혼상제에 없어서는 안 될 과일로 애용됐던 우리 배는 지금 또 다른 도전을 맞았다.
매일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일상적인 과일로 자리매김해 새로운 소비를 촉진해야 하는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신선의 과일 배,
육종으로 더 달고 시원해지다

우리나라의 고문헌에서 배나무에 대해 언급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사기’이다. 고구려 양원왕의 통치시기에 왕도의 배나무가 서로 맞붙어 있다는 ‘연리지’의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있던 것이다. 북송의 ‘신당서’에서는 발해의 배나무에 대해 언급이 됐으며, 고려시대에는 배나무를 심어 소득을 높이도록 나라에서 권장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당시에도 배는 귀한 식량이자 달콤한 맛을 지닌 귀한 과일로 인식됐던 것이다.
하지만 배의 품종에 대해 엄격하게 따지고 재배기술이 발달한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배의 명산지와 여러 재래종이 언급됐는데 그중에서도 ‘함소리’와 ‘교리’는 문헌상에서 가장 맛있는 배로 남아있다. 문인 서거정은 ‘함소리’의 맛에 대해 ‘한 입 씹으니 혀 밑에 파도가 이는 것을 알겠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본초강목’에서도 향기로운 즙이 넘치며 능히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배로 소개했으니 당시의 유명세를 짐작해볼 수 있다. ‘교리’의 맛도 만만치 않다. 조선 중기의 시인 이응희는 ‘교리’에 대해 ‘눈을 머금은 듯, 서리를 삼킨 듯하니 굳이 신선의 음료를 마실 필요가 없다.’고 적었다. 신선의 입맛에 흡족할 과일로 칭송됐을 정도니 관혼상제에 쓰이는 귀한 과일로 정착한 것도 납득이 간다.
배
한편 근대적인 품종육성은 일제강점기부터 이루어졌다. 일본인들에 의해 ‘봉리’, ‘팔달’, ‘세검’ 등의 품종이 육성됐지만 널리 보급되지 못했고, 일본에서 도입한 품종에 밀렸다. 이후 1954년부터 원예시험장에서 배 품종육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전과 지금의 품종 목표는 많이 다르다. 과거에는 제수용, 대가족 소비에 적합하도록 과실이 크고 모양이 예뻐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한 명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중소형 배의 필요성이 늘어났다. 여기에 이상기후에도 버틸 수 있는 저항성, 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출하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기에 고유의 맛을 지닌 채로 출하되는 것 등이 요구되고 있다.

건강식품·산업적 이용까지
소비 다각화

배의 약성은 오랜 옛날부터 언급돼 왔다. 심한 감기가 들었을 때 따뜻하게 꿀과 익힌 배숙을 먹는 것이나, 숙취에 갈은 배를 먹는 등의 민간요법은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도 합리적이고 대중적이다. 배를 먹었을 때 갈증이 해소되고 기침과 열을 다스리는데 효과적이었던 것을 체감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배는 다양한 효능을 지닌 성분들이 많이 함유돼 있다. 염증과 바이러스, 병균 등에 대항하고 기름지거나 탄 음식 등이 유발할 수 있는 발암물질의 인체 흡수를 막아 암 예방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배
이와 함께 배의 효능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대사증후군 개선이다. 배 적과 시 버려지는 유과의 추출물로 비만 쥐에 5주간 투여한 결과, 체중과 내장지방이 줄었고 당 대사도 정상수준으로 회복됐다.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된 유과에서 새로운 소비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것이다.
또한 배에 아삭한 식감을 주는 석세포 또한 산업적 이용 가능성이 밝혀지고 있다. 두꺼운 세포막이 과육 내부에 박힌 것을 석세포라고 하는데, 이 분말이 미세플라스틱을 대신할 수 있는 유력한 대체재로 거론된 것이다. 활용 가능한 상품은 치약과 피부 각질제거제다. 배의 서걱거리는 식감은 치아 청결에도 좋다고 여겨져 ‘배먹고 이 닦기’라는 속담이 내려올 정도다. 그런데 배에 함유돼 있는 석세포가 실제 치아의 연마 효과에 큰 효능을 보인 것이다. 특히 프라그 제거 치약에 비해 1.8배 효과가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와 함께 석세포 분말을 첨가해 제조된 각질제거제는 모공 속 노폐물을 제거해 모공을 축소하는 효과도 보여줘 새로운 소비 창출 가능성을 보였다.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즐기는
우리 배

배
일상에서 배와 신고배는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신고배는 과육이 부드럽고 풍부한 과즙을 지니고 있어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기 때문에 배 농사의 80%가량을 차지하는 품종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을 명절인 추석에 출하하기 위해 적정 숙기를 채우지 않은 과실이 풀리면서 배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자연히 재배면적도 꾸준히 줄었다. 현재 재배면적은 1만ha 이하로 2019년 생산량은 20만 1천 톤을 기록했다. 2008년 47만 1천 톤과 비교했을 때 생산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결과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의 소비 축소를 극복하고, 제수용 과일이 아닌 생활 속 과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다양한 품종들이 개발되고 있다. 여름에도 수확이 가능하거나 작은 크기로 껍질째 먹을 수 있는 배 품종 개발 등 소비자들의 입맛을 다시 사로잡기 위한 노력들이 지속되고 있다. 수확 시기도, 맛도 다채로운 국산 배 품종들을 소개한다.
한아름

한아름

나주에서 8월 중순에 수확되는 조생종으로 과즙이 풍부해 여름철 갈증 해소에 좋다. 평균 무게가 480g이라 혼자 먹기에도 부담이 덜하고, 가을에 출하되는 배와는 달리 여름에 나오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조이스킨

조이스킨

1995년 ‘황금배’와 ‘조생적’을 교배해 2011년 최종 선발된 품종이다. 껍질까지 베어 먹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 먹기 쉬운 편리성이 극대화된 상품이다. 무게가 320g에 불과한 작은 크기라 단체급식용 디저트로도 보급될 가능성이 있다.
설원

설원

껍질을 깎아두어도 갈변되지 않고 과육이 비교적 단단해 유통에 유리한 상품이다. 특히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소량의 과일을 먹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조각과실용으로 가공하기에 좋다. 1994년 ‘수황배’와 ‘만풍배’를 교배하여 2010년에 최종 선발됐다.
슈퍼골드

슈퍼골드

‘추황배’와 ‘만풍배’를 교배해 얻은 품종으로 2008년 육성됐다. 저장력이 우수하고 당도와 산도가 적절히 조화돼 맛이 깔끔하다는 장점이 있다. 육식을 주로 하는 구미권 국가에 수출하기 위한 품종으로 육성됐으며 녹황색 과피가 특징이다.
신화

신화

9월 중순에서 하순에 생산할 수 있어 추석에 안정적으로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신고’와 ‘화산’을 교배해 2009년 육성했으며 평균 무게 630g, 당도 13.0°Bx 내외의 과실이 수확된다. 상온에서 30일~40일까지 보관 가능하다.
만풍

만풍

1982년 ‘풍수’에 ‘만삼길’을 교배해 1997년 최종 선발된 품종이다. 나주 기준 9월 하순에 수확되며 녹갈색의 편원형으로 770g 내외의 큰 과실을 수확할 수 있다. 바삭하면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건조과로 활용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린시스

그린시스

배의 주요 병해인 검은별무늬병에 내병성을 가지고 있으며, 작물보호제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 국내 육성품종인 ‘황금배’와 서양배인 ‘바틀렛’을 교잡해 국내 최초 종간교잡 품종으로 나왔다.
추황

추황

1985년 ‘금촌추’에 ‘이십세기’를 교배해 만든 품종으로 나주 기준 10월 20일이 성숙기이다. 저온에 보관하면 껍질이 검게 변하는 현상이 발생하지만, 오히려 맛은 더 좋아진다는 특징이 있다.
만황

만황

1986년 ‘만삼길’에 ‘추황배’를 교배해 2006년 최종 선발됐다. 4월에 배꽃이 필 때 오래도록 숙성했다가 먹을 수 있는 특별한 품종으로 석세포가 적어 ‘추황배’에 비해 육질이 부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