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종개발부터
유통까지
함께 길을 찾는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강삼석 소장

글 ㅣ 김주희사진 ㅣ 황성규
물 많고 아삭아삭하면서 시원한 향이 코 끝에 감도는 배는 가을의 대표적인 과일로 꼽힌다.
특히 신고배만 고집했던 옛날과는 달리, 국내에서 육성된 슈퍼골드, 그린시스 등 다양한 품종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품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다.
올해 개소 50년이라는 뜻 깊은 날을 맞아 강삼석 소장에게 그 간의 이야기와 목표에 대해 들어보았다.

재배법부터 수확 후
관리 기술 개발까지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강삼석 소장
배연구소가 설립된 것은 1970년 4월이다. 초기에는 호남지역에 적합한 과수재배법 개발을 목적으로 해 배, 감, 복숭아, 포도, 매실 등 다양한 과일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이후 나주배연구소로 확대된 것이 1991년 11월이다. 배를 전문으로 품종 육성부터 수확 후 관리까지 전 생산 단계에 필요한 기술개발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이후 2006년에는 단감, 2018년에는 블루베리 연구 기능 등이 추가로 부여되었다.
“지금은 연구직 10명, 지원인력 6명 외 공무직 등 연구보조인력 40여 명이 연구소 운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배연구실, 감·소과류연구실, 생산시스템연구실 등 3개 연구실과 함께 나주시에 있는 20ha의 시험포장과 영암군에 있는 14ha의 시험포장이 있습니다.”
다양한 기술 개발 중에서도 특히 역량이 집중된 것은 신품종 육성사업이다. 다른 기술에 비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한 분야인 만큼 국가기관에서 담당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새롭게 개발된 배 품종이 적지 않다. 학교 급식용으로 적합한 작은 과일, 추석이 이르게 와도 안정적으로 출화가 가능한 조생종 품종, 껍질째 먹을 수 있는 배 등 다양한 품종이 보급중이다.
“배의 소비패턴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선물용이나 제수용으로 많이 쓰이면서 과실이 크고 모양이 예쁜 것을 중심으로 육성이 되었어요. 하지만 예전처럼 커다란 과일 위주로 육성하면 핵가족, 1인 가구가 많이 늘어난 상황에는 소비가 부담스럽거든요. 쉽고 편리하게 소비할 수 있으면서도 맛이 좋아야 해요. 품종이 다양하게 출하되어서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면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으면 더 좋고요.”

농가엔 기술 이전,
시장 확대는 신품종으로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강삼석 소장
새로운 품종이 보급되면 그에 따른 재배 기술 교육도 따라가야 한다. 품종별로 취약점이 다르기 때문에 관성에 따라 재배를 하다 보면 결과가 시험포장의 결과와는 동떨어지게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 ‘수요사랑방’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매년 집합교육을 실시한 뒤, 교육에 참여한 농가를 대상으로 직접 방문하여 교육 내용이 잘 실천되고 있는지 살피고 현장에서 문제점을 개선하기도 한다. 특히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토양의 상태를 균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육종을 할 때 제시한 특성이 그대로 나올 수 있으려면 나무가 심어진 토양의 상태도 시험포장과 비슷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장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다시 과수농가에 필요한 기술 개발로 이어진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대면 접촉이 쉽지 않아서 배 농가들이 가입해있는 ‘배사랑방’이라는 밴드를 통해서 선진농가의 재배 노하우를 동영상으로 제공했어요. 보다 안정적으로 재배기술을 전달하는 방식이라 생산자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요.”
농가와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는 만큼 그에 따른 어려움을 캐치하는 것도 빠르다. 인력을 덜 쓸 수 있는 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재배, 병해충에 강해서 농약을 덜 뿌릴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동적으로 과수원을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농업 기술 개발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이상기후로 인해 낙과와 냉해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과수원의 온도를 올릴 수 있는 연소장치, 바람과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기술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시장확대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도 배연구소의 몫이다. 대형마트와 MOU를 맺거나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관계자 대상으로 시식을 진행하고 경매까지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해당 품종이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해당 품종을 생산하는 농가와 연계해주기도 한다.
“전라북도 순창에 강천산이나 강릉 경포대처럼 8월 중순에 사람들 많이 모이는 유원지에서 홍보겸 판매를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아름’이라는 품종을 한 300kg 이상 싣고 가서 시식을 진행했는데, 소비자들이 여름에도 배가 있다는 것을 신기해하면서 사가시더라고요. 100개 상자를 한시간 반만에 모두 판매했습니다. 처음에 시식회를 할 때는 시범품종을 가져가곤 했는데, 맛을 본 소비자 분들이 드셔보시고 구입하려고 해도 보급이 안 된 상태이니 판매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보급이 된 품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국산 배 시장에서 수출 비중도 상당하다. 2019년 기준으로 수출량이 20.7톤에 달하는데, 이는 신선 농축산물로서는 상위 4번째에 드는 수출량이다. 주요 수출국으로는 미국과 대만, 베트남 등을 들 수 있으며 그 외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캐나다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본토 마켓은 반응이 아직 미미하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깎아서 잘라 먹는 배가 주류지만, 서양권에서는 작은 배를 그대로 들고 먹는 방식이 훨씬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배연구소는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여 크기가 작고 껍질째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배품종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강삼석 소장

시장확대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도
배연구소의 몫이다.

다양하게 섭취할 수 있는
우리 배

배를 가공해서 만든 식품이나 공산품이 등장하면서 시장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배즙이나 배 말랭이, 잼이나 칩처럼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식품도 있지만, 최근에는 공산품의 원료로도 배를 사용하고 있다. 배의 단단한 조직인 석세포를 미세플라스틱 대체제로 써서 치약과 스크럽제를 만드는 기술이 이미 특허출원되어 시제품으로 생산되었다. 배의 연육효소를 따로 분리해 소화제로 개발하여 특허를 출원한 경우도 있다.
“배 특유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을 즐기는 데에는 생과로 먹는 것이 좋지만, 의외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게 배라는 과일입니다. 특히 요새는 다방면으로 배가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어요. 배나무에는 소를 매어놓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배를 먹은 소가 살이 찌지 않아서 생긴 것으로 추측되었거든요. 그런데 실제 비만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어요. 이러한 유효물질을 이용한 기능성 제품을 만드는 것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배 가공식품
우리배 가공식품
새로운 품종으로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것도 한창이다. 요즘 새롭게 보급되고 있는 슈퍼골드와 그린시스 등은 저장력이 좋으면서도 독특한 맛과 식감을 자랑하는 차세대 품종이다. 특히 그린시스는 동양배의 식감과 서양배의 검은별무늬병 저항성을 가지고 있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모두 환영받고 있다. 열매의 무게가 470g 내외로 혼자 먹기에도 부담없다는 것 역시 장점이다. 이러한 품종 보급으로 배는 선물로 들어왔을 때나 먹는 과일이라는 인식을 깨고 언제나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나가고 있다.
집에서 생과를 이용해 요리를 하는 것도 권장하고 있다. 다양한 배 중에서 강삼석 소장이 추천하는 것은 만풍배를 이용한 즙과 슬러시다. 크기가 크고 과피도 두껍고 투박한데다 다 익어도 푸른 빛이 돌아 겉으로 보기에는 손이 가지 않지만, 잘라서 먹어보면 수박처럼 맛이 부드럽고 진하다. 만풍배의 즙을 짜면 마치 식혜처럼 부드럽게 넘어가고, 이를 얼려서 슬러시처럼 먹으면 당분 때문에 얼음이 보슬보슬 부드러워 식감을 즐기기에도 좋다. 이처럼 배로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을 개발하고 레시피를 담은 책자와 리플렛도 제작되어 공유되고 있다.
“제가 외국의 과일시장에서 부럽게 생각했던 것은, 같은 과일이라도 다양한 품종을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는 겁니다. 각자 원하는 맛이나 특징이 다르니 다양한 품종을 판매하면서 최대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거죠. 물론 생산자들은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까다롭고 힘들어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과일을 생산하는 것이 농가 소득 증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생산자 중심이 아니라 소비자 중심으로 과수가 재배되면서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과정에서 배연구소는 항상 함께 할 겁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