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식습관에 맞는
안전한 먹거리

정읍명품귀리사업단 손주호 대표

글 ㅣ 김희정사진 ㅣ 최성훈
추위에도 약하고, 습기에도 약하다. 생육 기간은 다른 곡물에 비해 2달가량 더 길다.
여름은 습하고 겨울은 추운 한국에서 키우기에는 까다로운 작물, 바로 귀리다.
이런 귀리를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해 다양한 상품으로까지 개발해낸 곳이 있다.
정읍명품귀리사업단은 손주호 대표를 주축으로 귀리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여러 가공식품을 판매하며 국산 귀리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식습관은 서구화되어도 먹거리는 안전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직접 들어보았다.

우리 밀 농사꾼,
귀리 농사에 발을 들이다

정읍명품귀리사업단 손주호 대표
정읍명품귀리사업단의 손주호 대표가 귀리 농사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2004년이다.
그 전까지 우리 밀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판매도 수확량도 많이 더딘 차에 귀리 육종 성과발표에 우연히 참석하게 된 것이다. 귀리의 생육 조건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귀리 육종 결과를 보면서 귀리 농사가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곡물에 비해 단백질과 불포화지방, 베타글루칸과 같은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2002년 타임지가 슈퍼푸드로 선정한 유일한 곡물인 데다 식습관이 서구화되는 만큼 서양에서 많이 먹는 귀리가 보편화될 거란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귀리의 재배법이나 특성을 잘 모르는 채 시작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봄에 파종하면 수확량이 적기 일쑤였고, 가을에 파종하면 추위와 장마철이 수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귀리는 숙기가 많이 늦는 편입니다. 가을 파종은 10월~11월에 해서 다음해 6월 하순에 수확하거든요. 그런데 겨울이 너무 추우면 동사할 수 있고 장마를 만나면 습기를 흡수해서 이삭에 달린 채로 발아해버려요. 4년 전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파종한 귀리 중에 70%가 동사한 적도 있어요. 반면 봄에 파종하면 같은 면적에 씨를 뿌려도 수확량이 10% 정도 적습니다. 5월~6월에 이상고온이 오면 수확량이 가을 파종의 60%까지도 떨어져요. 이때가 이삭이 나오는 시기인데, 고온이 오면 성장이 멈춰서 알맹이가 충실하게 여물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는 귀리의 중요한 영양물질인 아베난쓰라마이드의 영향도 있었다. 아베난쓰라마이드는 현재 보고된 바로는 곡물 중에는 귀리에만 포함된 성분이다. 수분을 접하면 이를 잘 흡수해 촉촉함을 유지하는 특성이 있어 보습 화장품에도 많이 쓰이는 성분이다. 이로 인해 수확 직전에 장마가 오면 수분을 흡수하면서 그대로 이삭이 발아하게 되는 것이다. 손주호 대표는 이렇게 몇 년간 실패를 하면서도 귀리 농사를 유지해나가며 그 나름대로의 재배법을 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쌀귀리와 겉귀리의 파종 시기에 차이를 두는 것이다. 겉귀리는 껍질이 겹겹이 있어 겨울 추위를 견디는 힘이 커 가을 파종에 쓰고, 쌀귀리는 속껍질이 없어 추위가 가셨을 때 파종하는 식이다. 주변 농가들도 손주호 대표를 따라 귀리 농사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읍명품귀리사업단에 합류한 농가가 62농가에 이른다.
“남들이 하지 않는 작물이면 농가들도 처음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재배법도 모르고 수익이 보장될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소비처를 어느 정도 확보해야 농가들의 재배 확대도 가능하죠. 우리 사업단 같은 경우에는 가공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 연합하면서 다양한 소비처를 확보한 상태에요.”
정읍명품귀리사업단 손주호 대표

귀리의 생육 조건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귀리 육종 결과를 보면서
귀리 농사가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다.

귀리 가공,
6차 산업을 만나 피어나다

손주호 대표가 정읍명품귀리사업단을 창단한 것은 2008년의 일이다. 귀리쌀을 비롯해 귀리 선식, 오트밀 등을 조금씩 가공해봤지만 완성품이 잘 나오지 않았다. 특히 귀리는 현미처럼 껍질을 깎아내는 과정을 거치는데 뉘나 겨가 잘 분리되지 않아 반품이 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귀리의 껍질을 깎아내고 뉘와 겨를 털어낸 뒤 혹시 섞여들 수 있는 다른 잡곡까지 완벽하게 걸러낼 수 있도록 11단계에 걸친 시스템을 갖췄다. 여기에 오트밀이나 선식 등으로 가공할 수 있도록 가공실도 따로 갖춰져 있다. 이렇게 원스톱으로 시설을 장만하는 데 약 7년이 걸렸다. 기계 제작사와 3번에 걸쳐 기계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든 시간이다. 이 지난한 과정을 도와준 것은 향토산업공모에서 선정되며 받은 지원금이었다.
정읍명품귀리사업단
정읍명품귀리사업단
“2013년 향토산업육성사업에 정읍귀리 명품화사업이 선정되면서 3년간 국비와 시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었어요. 귀리 가공시설에 무엇이 필요한지 정통한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기계를 도입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죠. 지금은 이런 가공 과정에 대해 특허까지 취득할 정도로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귀리 가공이 한층 정밀해지면서 소비자에게도 정읍 명품 귀리가 한층 더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정읍명품귀리사업단의 판매 채널은 아이쿱생협, 전라북도와 정읍시 로컬푸드 매장, 인터넷 홈페이지 등이다. 그 외에 단골들은 사업단으로 직접 주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충성 고객층이 15,000명가량 확보되면서 그만큼 양질의 원료곡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도 늘어났다. 농가들에게 양질의 원료곡을 받는 대신 계약재배를 해 정당한 가격에 수매하는 원칙을 세우자 사업단에 참가하는 농가들도 많아졌다. 이와 함께 주변 농가들의 다양한 잡곡을 수매하면서 잡곡밥을 해먹을 수 있는 잡곡모음 제품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귀리 상품으로 선점을 하다 보니 유통체계가 갖춰져 있어서 입지를 갖춘 것이 큰 장점입니다. 아이쿱생협 같은 경우에는 한 주에 오트밀 주문만 약 1,000개 정도 들어오기도 하고요. 이렇게 고객층을 확보하면서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물량만 산출해서 계약재배를 합니다. 올해에는 귀리 900여 톤을 수매할 계획이죠. 소비자와의 약속, 그리고 농가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계약재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읍명품귀리사업단

귀리 가공시설에 무엇이 필요한지
정통한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기계를 도입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죠.
지금은 이런 가공 과정에 대해
특허까지 취득할 정도로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정부와 소비자의 관심 늘어나길

한국인의 식습관이 상당히 서구화되었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밥’을 먹어야 끼니를 제대로 챙겼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식습관을 반영해서 나온 것이 귀리쌀이다. 밥을 지을 때 귀리쌀을 같이 섞어서 잡곡밥처럼 지을 수 있도록 껍질을 깎아낸 상품이다. 톡톡 씹는 맛이 있어 입맛이 없을 때도 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한시가 바쁜 직장인들에게 추천하는 것은 오트밀이다. 미리 두유나 우유, 요거트 등에 불려놓으면 부피가 8배까지도 늘어나 포만감을 느끼기 좋아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에게도 효과적이다. 치아가 약한 노약자나 속에 부담을 주는 음식을 피해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미숫가루처럼 타서 먹을 수 있는 선식을 권한다. 대부분의 상품이 별다른 가공 없이 1~2단계만 거치는 만큼 잔류농약 검사나 토양 검사 등을 수시로 시행하며 안전한 먹거리를 만드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 손주호 대표의 소망이 있다면 가격보다 안전한 먹거리를 우선하는 인식이 더 널리 퍼지는 것이다.
정읍명품귀리사업단 손주호 대표
“귀리는 특별한 병충해가 없어서 농약을 많이 뿌릴 필요가 없어요.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가기 다른 작물에 비해 쉬운 편이죠. 하지만 외국산에 비해서 생산비가 많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광작을 하면 기계화가 가능해 인건비가 많이 줄어들지만, 우리나라는 영세농이 많아서 생산비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자연히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게 되지요.”
외국산 귀리가 국산으로 옷을 갈아입고 유통되거나 농약 관련 검역이 허술한 것도 안타까운 점이다. 2019년 한 환경운동단체가 미국에서 유통되는 귀리 시리얼 샘플 132개를 대상으로 실험했을 때 제초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던 상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귀리를 수확할 때 완전히 습기가 날아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제초제를 뿌려 인위적으로 건조시켜 수확하기 때문이다. 외국산 귀리를 100% 검역하는 것이 아닌 만큼 수입 귀리에 대한 소비자의 안전의식이 확대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국산 귀리를 꾸준히 찾는 소비자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재배 방법을 찾아 연구하는 농촌진흥청과 농업기술원의 연구사들이 그렇다.
“겨울이 너무 추워서 귀리가 냉해를 입는 걸 방지하기 위해 멀칭 재배를 도입하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기계로 파종할 수 있게 농기계도 제작하고 있고요. 이렇게 국산 귀리도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두면서 발전하고 있으니 소비자분들도 많이 애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정읍명품귀리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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