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누에를 키워내다
부안 유유동 양잠농업

글 ㅣ 김희정
천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던 때 양잠은 국가적으로도 권장되고 중요하게 다뤄지는 산업이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누에치기를 권장하기 위해 선잠제와 친잠례를 행하기도 했다.
누에를 처음 치기 시작했다는 신선에게 왕이 제사를 지내는 선잠제를 치른 뒤에는
왕비와 내외명부들이 친히 뽕나무 가지를 잘라 잎사귀를 누에에게 먹였다.
이런 양잠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이 사라졌지만 지금도 전통적인 양잠농업을 유지하는 곳이 있다.
바로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유유마을이다.

뽕나무 가득한 누에 모양 산,
양잠의 산실이 되다

양잠
조선시대 뽕나무를 키우고 누에를 치지 않았던 지역은 보기 드물지만 그중에서도 부안 유유동은 다소 특출한 데가 있다. 이규보의 ‘남행월일기’에서는 누에치기를 하는 풍습이 중국의 잠총국과 같다고 언급되었다. 여기에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나 ‘대동지지’ 등에 부안의 특산물로 뽕이 거론된 것도 유유동의 양잠 역사를 웅변해준다. 다른 지역들과 비교해도 유난히 부안에는 뽕나무와 이를 먹이로 하는 양잠이 발달했던 것이다.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사방에 야트막한 산이 둘러싸여 있어 뽕나무들이 잘 자라던 것이 자연스럽게 양잠농업으로 이어졌다. 양잠에 있어서는 온도와 환기가 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유유동의 지형도 큰 장점이었다. 산 높은 곳에서 불어오는 남동풍과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이 산등성이에 한 번씩 걸러져 오면서 찬기가 덜해진 바람들이 사시사철 불어오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양잠농업의 전통을 보여주는 것이 마을 곳곳에 위치한 잠실이다. 지붕은 엉성하고 외벽도 오래되었지만 실제로는 그 나름의 기능성이 있다. 두껍게 돌과 흙으로 쌓은 외벽이 온도를 유지해주고, 위아래로 뚫은 환기창은 습기를 조절해 어린누에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준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양잠에 종사하며 가내수공식 양잠이 이어져 왔었지만 1970년대에는 51ha에 뽕나무밭을 일구며 잠업전업마을로 발전했다. 전국잠업증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980년 8월에는 전국양잠시범부락육성대회가 부안에서 개최되면서 현대에도 양잠의 전통을 이어왔다. 지금도 70호의 농가 중 30호가 누에를 길러 약용으로 판매하는 방식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아예 누에에게 안방을 내주고 온도계와 벽시계를 걸어 적당한 온도를 맞춰주고 때맞춰 밥을 주는 집도 여럿이라니 누에마을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누에가 농약이 묻은 뽕나무 잎을 먹을 수 없다 보니 마을 일대가 친환경 농사를 짓게 되었다. 마을 일대에 뽕나무가 넓게 심어져 있는 만큼 그 근방의 농지에 농약을 뿌리면 자연스럽게 뽕잎을 먹는 누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친환경으로 키운 뽕잎과 오디 열매를 가공한 식품들, 그리고 누에를 가공해 만든 건강보조제 등이 유유동의 새로운 특산물이 되었다. 입는 양잠에서 먹는 양잠으로의 변화가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양잠
누에
한편 마을에서 식재한 뽕나무의 종류는 크게 오디 열매를 생산하기 위한 것, 누에를 키우기 위한 것, 그 외 뽕나무 부산물을 얻기 위한 것으로 나누어졌다. 그중 가장 폭넓게 키워낸 종류는 오디 열매를 얻기 위한 뽕나무 품종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누에를 통한 시장 확보가 어려워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이 한층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오디 열매와 그 가공품을 판매하는 식으로 마을의 업종이 전환된 것을 반영한 셈이다.

뽕나무 가득한 산,
주변 식생은 다채로워

누에를 기르고 뽕나무의 부산물을 얻기 위해 개량된 뽕나무를 다수 이식했지만 한반도에 자생하는 뽕나무 종류를 산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유유동의 특징이다. 산뽕나무 군락은 총 5.6ha, 구지뽕나무 군락은 0.3ha에 이른다. 중국에서 개량된 산뽕나무와 구지뽕나무의 잎으로도 양잠을 했다던 옛 기록을 뒷받침하는 예다. 이전에는 소하천 주변에 구지뽕나무도 많이 자랐지만 하천을 정비하면서 구지뽕나무 군락지는 산 쪽에만 남았다.
주변 임상이 뽕나무 위주로 이루어져 있지만 마을 주변의 임야 지역에는 한층 다양한 식생이 존재한다. 소나무와 곰솔, 신갈나무와 참나무 등이 각각 자생하고 있다. 특히 유유마을 주변에서는 세계적으로 적은 개체군을 가지고 있는 백합과의 뻐꾹나리와 제비꽃과의 태백제비꽃 등이 관찰되었다. 또 한반도의 자연환경에서 적응하고 진화해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특산식물로는 인동과의 병꽃나무가 여러 개체 분포하는 것도 확인되었다.
양잠
동물상에 있어서는 한층 희귀한 동물들이 확인되었다. 멸종위기종 I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달, 멸종위기종 II급인 삵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변산반도국립공원 일대에서 멸종위기 II급인 검은머리 물떼세, 알락꼬리마도요, 말똥가리, 흰목물떼새, 수리부엉이 등이 관찰되었다. 천연기념물인 원앙과 붉은배새매, 황조롱이, 소쩍새 등도 관찰되어 유유마을 주변의 식생이 풍요로움을 미루어볼 수 있었다.
양서류와 파충류, 어류 생태계에서도 이런 경향성이 나타났다. 양서류는 10종, 파충류는 15종이 보고되었는데 그중 맹꽁이와 금개구리, 살모사 등이 환경부에서 지정한 보호야생동물이었다. 멸종위기종인 구렁이가 확인되기도 했다. 어류에서 한국 고유종으로 나타난 종류로는 각시붕어, 가시납지리, 참몰개, 부안종개 등 10종이 있었다. 환경부 보호대상종인 부안종개는 백천 수계에서만 서식하는 종류이기도 하다. 반면 외래어종인 배스와 블루길, 황소개구리가 출현하는 것이 보고되었다. 특히 배스는 저수지를 중심으로 대량으로 퍼져있어 어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마을 일대에서 친환경농업을 하는 것과 함께 변산반도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지리적 특징이 마을 주변의 식생에도 영향을 마쳤다. 전반적으로 생태계가 균형을 이루면서도 유유동의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는 것도 농업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이런 면모가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오디가 탐스럽게 열리는 6월이다. 초록빛 싱그러움을 뽐내는 초여름에 검붉은 오디가 조롱조롱 매달린 모습이 주변을 둘러싼 산세와 함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농업마을의 독특한 경험을 이어나가는 법

비록 예전처럼 누에고치를 풀어내 비단실로 만들어가는 것으로 생계를 잇지는 않지만 유유동 양잠 문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참뽕축제다. 축제를 개최하기 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누에의 영혼을 위해 잠령제를 올린다. 누에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시에 사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올리는 제사다. 이렇게 제를 올리고 나면 다양한 누에 체험이 이어진다. 누에에게 뽕잎을 미끼로 주며 정해진 거리를 빠르게 움직이는 누에 올림픽부터 누에고치를 실로 뽑아내는 전통 실켜기 등이 마련되어 있다. 축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양잠 농업의 전통을 인지시키는 방법을 취했다.
한편 마을 전역이 체험마을로 조성되어 있어 사계절 내내 뽕나무와 관련된 체험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 중 가장 짧게 진행되는 것은 5월에서 6월 사이에 진행되는 오디 따기 체험이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뽕잎을 따며 누에도 관찰하고 뽕잎으로 반찬을 하는 나물 채취 체험이 있다. 둘 다 농경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수확의 기쁨과 자연의 가까움에 대해 체험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는 체험이다. 더 나아가 뽕잎을 이용한 요리체험과 오디 열매를 이용한 체험도 진행하고 있다. 오디잼이나 뽕잎소금 만들기, 뽕잎밥과 주먹밥 만들기 등은 1년 내내 진행된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뽕나무의 의미에 대해 되새김하게 만드는 체험이기도 하다.
전업양잠마을이지만 양잠을 통해 얻고자 하는 물산이 달라지면서 유유동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다소 달라졌다. 그러나 뽕나무를 가꾸고 누에를 치는 생활상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여기에 지역의 특산물을 다양한 먹거리로서 지켜나가는 방식이 더해졌다. 뽕잎의 향을 즐길 수 있는 차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누에에 종균을 접종해 동충하초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색 고운 오디로 만들어낸 막걸리, 뽕잎을 함께 넣어 쪄낸 두부 등도 유유동의 뽕나무를 다양하게 활용하며 만들어진 향토음식이다. 사양길을 걸어가던 양잠산업이 새롭게 뽕나무 가공 음식으로 활기를 얻으며 양잠도 이어져 나갈 힘을 새롭게 얻었다.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찾아내는 생존 방식은 이렇게 옛 전통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또 다른 가교가 되었다.
부안 유유마을
부안 유유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