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유전자원을
수집·보존하는 일은
생명을 지키는 일

농업유전자원센터 박교선 센터장

글 ㅣ 김주희사진 ㅣ 이제형
농업유전자원은 농업과 생명산업의 핵심소재로 국가의 중요한 자산이다.
지금 세계는 총성 없는 종자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원은 그 국가의 국력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원을 안전하게 보존해 후손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책무를 담당하고 있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 박교선 센터장을 만나봤다.

세계 최고의 농업유전자원
국가 관리체계

농업유전자원은 현재는 물론 미래의 농업 및 식량생산에 활용되는 유용한 유전소재로서 보존가치가 있는 종자, 미생물, 곤충 등의 생물체를 총칭한다. 환경파괴와 오염에 따른 근연 야생종 소멸 및 육성품종의 재배면적 확대로 유용한 재래종의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농업유전자원의 확보와 보존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가 된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농업유전자원 국가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국제규격의 첨단 농업유전자원 저장시설을 전주와 수원에 동시에 갖추고 2팀 4연구실 체계로 1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농업유전자원 종합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농업유전자원 수집·분류·보존·증식·분양·특성평가 및 이용기술 개발, 농업유전자원 종합정보 관리·중복보존 및 관리기관 지정·운영, 농업유전자원에 관한 국제교류·협력 및 인력 양성의 임무를 수행한다.
농업유전자원센터 박교선 센터장
“이미 세계적으로 생물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생물유전자원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농업유전자원은 식량과 의약품 및 생명공학 산업의 기초재료로 그 무한한 고부가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업유전자원을 지속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확보와 보존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생명을 지키는 일임과 동시에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기도 하지요.”
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 보존되고 있는 유전자원의 수는 실로 방대하다. 식물유전자원 1,599종 23만 7,043자원을 보존하고 있으며 영양체 자원 1,488종 2만 6,088자원을 포함하면 3,087종 26만 3,131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 및 국제기구 등과의 협력을 통해 국내외의 토종, 야생종 유전자원을 수집·확보한 결과다. 국내에서는 국제쟁점에 대비하기 위해 토종유전자원을 수집대상으로 선정하고, 국외유전자원은 병충해저항성, 기후변화대비 생물, 비생물 스트레스 저항성 자원 등 유용자원을 중심으로 선정·수집하고 있다.
“보존되고 있는 농업유전자원은 모두 각각의 유전적 형질을 보유한 소중하고 우수한 유전자원입니다. 다만 나고야의정서 등 국제조약으로 유전자원 도입 및 활용 제한이 국제쟁점이 되고 있는데요. 따라서 국제적으로 자원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우리나라 토종인 야생종, 재래종 등 5만 4,839자원이 특히 소중한 유전자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농업유전자원센터의 유전자원 수는 세계 5위 수준이며, 안전성 측면에서 국제기구로부터 세계종자보존소로 인정을 받아 11개국의 2만 자원을 보존해 주고 있다.

기후변화·재난 등에 대비한
국내·외 4중복보존 시스템 구축

가육유전가원센터 이성수 센터장
선정·수집한 농업유전자원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일도 중요하다. 농촌진흥청 종자은행(전주·수원)은 리히터 규모 7의 강도에 견딜 수 있게 건축됐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을 4대 사고에 보존했던 것처럼 전주와 수원에 위치한 농촌진흥청 종자은행과 봉화에 위치한 산림청의 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에 3중복보존함으로써 기후변화나 환경변화, 재난 등 유사시에 대비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도 토종자원 2만 3,000여 자원을 블랙박스 형태로 중복 보존하여 국내·외에 4중복보존 시스템을 구축했다.
“세계종자보존소 역할도 하고 있는 농촌진흥청 종자은행의 중기저장고는 4℃에서 30년 보존, 장기저장고는 –20℃에서 100년 보존이 가능합니다. 또한 –196℃의 초저온에서 동결 보존하는 기술을 통해 마늘, 사과 등 7작물, 1,558자원을 보존함으로써 영양체 유전자원의 안전보존 체계도 확립했습니다.”
현재 87개국 약 100만 점 규모의 유전자원을 보존하고 있는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는 지난해 10월, 강낭콩과 돌동부, 제비콩, 좀들팥 등 우리 토종종자 1만개를 기탁해 영구 보존했다. 지난 2008년 아시아 국가 처음으로 토종종자 33작물 1만 3,000여 자원을 기탁한 이후 두 번째다. 이번 기탁으로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 중복 보존되는 우리나라 토종자원은 총 44작물 2만3,185개로 늘어났다.
“국제적으로 자원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우리 토종자원을 국제종자보존소에 기탁한 것은 세계작물다양성재단과 국제협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국제농업유전자원 정보체계(Genesys)에도 참여하면서 자원정보 공유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케냐-두류, 조지아-과수, 세계채소센터-채소 등 국가·국제기구와 국제협력과제 수행 등 전략적 협력을 통해 자원을 확보하고, 농업유전자원 기·수탁을 수행하는 등 유전자원 보존·활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전자원을 수집하는 것만큼이나 보존·활용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일례로 지난 2015년 시리아에서 내전으로 인해 유실된 종자를 복구하기 위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서 인출한 사례가 있었다. 만약 유전자원을 안전하게 보존하지 않았더라면 유실되었던 종자를 다시 싹틔울 수 없었을 것이다. 유전자원 보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던 사례였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소

농업유전자원 활용으로
가치를 더하다

가육유전가원센터 이성수 센터장
농업유전자원은 활용되어야만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종자산업 활성화 촉진을 위해 육종가와 공동으로 유전자원 평가, 유용자원 선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수요자가 요구하는 유전자원을 분양하고 있다.
“특히 수입금지 자원으로 분류되어 수입이 어렵지만 육종가가 필요로 하는 해외자원에 대해서도 식물검역 관계규정에 따라 격리재배로 안전성을 확보한 후 적극적으로 분양하고 있습니다. 또한 분양된 유전자원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데요. 분양된 유전자원이 2020년에 442건의 품종육성 등에 활용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국가 농업유전자원 활용도는 2018년 32%에서 2020년에는 37.3%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부터는 종자산업체, 대학 등 종자산업 육성지원을 위해 ‘수요자 맞춤형 육종자원 대량·신속 발굴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민간 및 지자체 등 69개 연구소를 ‘농업생명자원 관리기관’으로 지정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유전자원 국가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모두 농업유전자원의 지속적 활용과 국가자원화를 위한 연구 활동들이다.
이와 함께 수집·보존 중인 유전자원에 대해 육종가와 공동으로 특성평가도 진행하고 있다. 종자산업에서 요청하는 기본적인 농업특성인 수량, 당도, 산도, 수형 등을 비롯해 최근 기후변화에 의해 요청이 늘고 있는 병저항성이 높은 자원, 특수 수요를 뒷받침하는 주요 기능성 성분에 대한 연구다. 또한 병충해와 재해로 인해 소실될 우려가 높은 영양체 유전자원은 실험실에서 안정적으로 보존하는 기술을 연구해 딸기, 나리 등 7작물 1,610자원을 초저온동결해 보존하고 있다. 과수화상병 대응의 일환으로 배 초저온동결보존 연구 등 대상작물을 점차적으로 확대하는 연구도 지속하고 있다.
“현재 지구온난화에 따라 여름철 고온 및 집중호우 등 이상 기상에 견딜 수 있는 아열대·열대 유전자원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유전자원이 다양해야 기후변화로 인한 다양한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품종 개발이 가능합니다. 또한 식품소재 뿐 아니라 신약 개발을 위한 소재에도 활용되기 때문에 농업유전자원센터는 물론 민관 협력을 통해 농업유전자원을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연구를 지속해나갈 계획입니다.”
식량의 안정적인 수급은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 밥상에 오르는 식량의 시작점은 종자이며, 이 종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원의 확보와 보존이 필수다. 세계 각국의 유전자원 확보를 위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농업유전자원센터의 연구와 노력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혀주고 있다.
“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는 짧은 역사에 비해 많은 성과를 이루었으나 앞으로는 수요자가 원하는 자원 확보를 위해 더욱 노력할 계획입니다. 미래 수요를 예측하여 세계 각국으로부터 다양한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기후변화 등 글로벌 위기상황에서 농업유전자원을 국가 종자주권 확보 및 생명산업 신성장동력의 핵심자원으로 발전시키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소 현재욱 소장

식량의 안정적인 수급은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 밥상에 오르는 식량의 시작점은 종자이며,
이 종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원의 확보와 보존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