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이용한 안전한
작물보호제를 위하여

한국화학연구원 친환경신물질연구센터 최정섭 박사

글 ㅣ 김지영 사진 ㅣ 이제형
상추에 꼬이는 병해충을 줄이기 위해 마늘을 함께 심고 배춧과에 꼬이는 유충을 막기 위해 고추를 함께 섞어 심는다.
제충국의 살충 성분으로 진딧물 같은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채소밭에 제충국을 울타리처럼 심기도 한다.
각 식물들의 궁합이 병해충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예다.
화학 작물보호제가 발달한 지금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화학 작물보호제의 위험이 대두되는 현실에서 천연물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작물보호제의 개발은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친환경신물질연구센터의 최정섭 박사는
환경을 해치지 않고 농작물을 보호하는 작물보호제를 개발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효율성보다 중요한 가치를 위한
바이오 작물보호제

한국화학연구원 친환경신물질연구센터 최정섭 박사
한국화학연구원의 연구본부는 화학공정연구본부, 화학소재연구본부, 의약바이오연구본부, 정밀·바이오화학연구본부, 화학플랫폼연구본부로 나누어진다. 그중에서도 친환경신물질연구센터가 속한 본부는 의약바이오연구본부다. 친환경신물질연구센터는 국내 유일의 친환경신물질 작물보호제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센터로 신규 작물보호제 개발, 국민생활문제 해결형 R&D, 저독성 고기능 대체제 개발 등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친환경신물질연구센터의 모태는 한국에 1987년 물질특허가 도입된 뒤 국내 순수기술에 의한 국산 신농약 개발을 기치로 설립된 ‘농약활성연구실’이에요. 지금은 국내 유일의 친환경 신물질 작물보호제 원천기술 개발 연구센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작물 보호 기능은 높으면서도 저독성 및 환경에 대한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은 친환경 작물보호제 소재발굴 및 기술개발이 친환경신물질연구센터의 주요 연구분야에요.”
독성이 적으면서도 작물을 보호할 수 있는 물질을 연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합성 작물보호제가 첫 번째로는 환경에, 더 나아가서는 인체에도 장기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성분 개발의 중요성은 절대 작지 않다. 꾸준한 연구에 힘입어 합성 작물보호제의 큰 장점이었던 효율성도 점차 따라잡는 추세다.
한국화학연구원 친환경신물질연구센터 최정섭 박사
“바이오 제초제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상대적으로 독성이 낮고 생태계에 안전할 가능성이 커요. 천연물질 기반의 소재인 만큼 자연 생태계에서 미생물 등에 의한 분해가 쉽기 때문에 환경에 부담을 미치는 것을 줄일 수도 있고요.”
제초제가 환경과 인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로 살충제이자 제초제로 쓰였던 DDT가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971년 농약 허가가 취소되었지만, 토양 잔류성이 높다는 사실이 2017년 유기농 계란 DDT 검출로 다시 한 번 알려지게 되었다, 38년 전 과수원이었던 땅에 뿌려졌던 DDT가 그 흙을 쪼고 다녔던 닭에 흡수되어 달걀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DDT가 무서운 이유는 반감기가 오래 간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DDT는 지방에 잘 녹기 때문에 체내에 들어오면 외부로 배출하기가 쉽지 않고 몸 안에 오랫동안 남아있게 된다. 문제는 인체가 DDT에 오랜 기간 노출되었을 때는 간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암을 비롯해 뇌종양, 뇌출혈 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반면 DDT의 살포 목적이었던 해충과 잡초들은 세대교체가 빠르다 보니 DDT에 내성이 생긴 잡초와 해충은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기합성 작물보호제를 뛰어넘는 친환경적인 작물보호제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증가하는 셈이다.
“해외에서 수확 직전 뿌리는 제초제로 자주 쓰이는 글리포세이트 같은 경우는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의 발암 물질 2A 등급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학교 운동장의 관리인이었던 드웨인 존슨의 암 발생이 글리포세이트를 주원료로 한 몬산토의 제초제와 연관성이 인정된다며 2억 8,9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하기도 했어요. 2020년 판결이 난 항소심에서 배상액이 2,040만 달러로 줄어들긴 했지요. 하지만 현재에도 광범위하게 쓰이는 제초제가 인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된 사례입니다.”

흙에는 답이 있다,
토양 방선균이 선도 소재가 되기까지

바이오 작물보호제를 개발하는 데에도 다양한 소재가 있다. 그중 최정섭 박사가 주로 연구를 진행하는 분야는 토양 방선균에서 다양한 작물보호제 성분을 발굴하고 최적화하는 것이다. 그 중 제초활성 선도 소재는 이미 비선택성 잡초 방제제로서 기술이전을 완료했고 미국, 일본 등에 산업재산권을 등록하기도 했다. 딸기 흰가루병에 방제 효과가 있는 살균활성 소재도 발굴해 현재 유기농업자재 공시를 준비 중에 있다. 나방류와 같은 해충을 방제하는 방선균도 현재 국내 농약 기업과 민간수탁과제로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토양 방선균으로 작물보호제 소재를 개발하는 것은 전국의 국공립공원과 수목원, 섬, 해안가, 비농경지 등을 대상으로 토양시료를 채취하는 데에서 시작돼요. 토양 방선균은 흙이나 마른 풀 따위에 기생하는 세균과 곰팡이의 중간적 성질을 가진 미생물이에요. 그 환경에 따라 다양한 방선균이 분포하는데 현재까지 발견된 항생물질의 약 70%가 방선균에서 분리되었을 정도죠.”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모인 토양시료는 선택배지를 통해 토양 방선균만 분리하고 배양하는 과정을 거친다. 다음은 감수성 식물을 대상으로 해당 방선균의 활성평가를 통해 각 분야에 활성을 보이는 후보소재를 선발하는 과정이다. 제초활성소재를 발굴하는 경우, 바랭이를 대상으로 시험을 해보는데, 밭에 발생하는 대표적인 잡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발된 후보소재들은 주요 농경지 잡초 10종을 대상으로 활성평가를 한 뒤 유효물질을 분리, 정제해 화학구조를 규명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에야 산업재산권을 출원, 등록하고 그 작용기전을 연구하게 되는 식이다.
“바이오 제초제는 합성 제초제에 비해 방제 효과가 낮아서 많은 양이 필요하고 생산비도 상대적으로 높다는 게 단점이었어요. 하지만 토양방선균 대사체를 기반으로 제초제를 개발하면서 방제 효과도 높이고, 균주 개량 및 대량생산공정 기술개발로 생산비를 낮출 수 있게 되었죠. 특히 기존의 합성 제초제에 저항을 가진 잡초들에 대해 새로운 작용 기전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아서 방제 효과가 더 높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화학연구원 친환경신물질연구센터 최정섭 박사

바이오 제초제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독성이 낮고 생태계에 상대적으로
안전할 가능성이 커요.
천연물질 기반의 소재인 만큼
자연 생태계에서 미생물 등에 의한
분해가 쉽기 때문에
환경에 부담을 미치는 것을
줄일 수도 있고요.

바이오 작물보호제,
국내 시장에서 더 사랑받길

작물보호제
현재 한국의 유기농업자재 시장은 약 700억 원에 달하는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적으로도 바이오 작물보호제 시장은 2009년 이후 연평균 17% 수준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특히 2014~2016년 사이에는 연평균 22.5%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OECD 국가에서 농약 투입을 제한한 것과 함께 소비자들의 친환경 재배 작물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하면서 유기농업자재 시장이 전반적으로 성장세를 탄 것이다. 그러나 국산 바이오 작물보호제가 국내 시장에서는 아직 점유율이 미미하다. 전 세계적으로 5.6%의 시장 비중을 차지한 것에 비해 국내에서는 0.8%의 비중을 보일 뿐이다.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이오 작물보호제가 개발되다 보니 기업들이 연구에 투자하는데도 한계가 있어요. 바이오 작물보호제를 등록 완료한 경우도 기업별 평균 1건에 불과하고요. 그런 점에서 아직 성장해야 할 부분이 많죠. 친환경 농자재에 대한 관리 기준도 개정이 필요해요. 현재 농약관리법에서 유기농업자재의 범위는 토양개량용, 작물생육용, 토양개량 및 작물생육용, 병해관리용, 충해관리용, 병해충관리용 등 6가지 자재만 허용되어 있어요. 하지만 농사는 곧 잡초와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잡초방제용 자재를 허용해달라는 규정 개정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아직은 진전이 없는 실정입니다. 앞으로 산·학·연·관의 제초제 또는 잡초방제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만큼 이를 보조할 수 있는 바이오 작물보호제의 필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농경 자체가 자연의 법칙과 일정 부분 맞서는 과정인 만큼 작물보호제를 비롯한 여러 자재들을 사용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보다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우리 강산에 부담은 적게 주기 위해 최정섭 박사는 친환경물질센터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작물보호제

토양방선균 대사체를 기반으로
제초제를 개발하면서 방제 효과도 높이고,
균주 개량 및 대량생산공정 기술개발로
생산비를 낮출 수 있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