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에서
어엿한 농업인으로의 탄생기

외갓집신선가 정진슬 대표

글 ㅣ 김주희사진 ㅣ 황성규
2017년의 정진슬 대표는 본인이 농업에 뛰어들게 될 것을 알았을까?
농가에서 나고 자라면서 할아버지가 고춧대를 묶는 것을 도와드리는 식으로 간간히 일을 도와드리고는 했다.
그러나 가업승계농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체험농가의 대표로 나서는 것은 그 전의 직장생활과 완전히 궤가 다른 일이기도 했다.
정진슬 대표는 하다 보니 농업에도, 체험교육에도 더 욕심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강소농으로서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외갓집신선가의 도전기를 들어보았다.

할머니부터 어머니와 딸까지,
3대가 모인 체험농장

외갓집신선가 정진슬 대표
정진슬 대표가 2017년 가을 대전으로 내려왔을 때는 여러모로 심신이 지쳐있을 때였다.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저녁에는 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힘들었지만, 운동선수로 활동했을 때 다쳤던 몸이 계속 아팠던 게 가장 괴로웠다.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소식에 잠시 고향으로 내려온 후 계속 아팠던 다리수술까지 하고 재활을 하던 중 새롭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오래도록 전통 수제찻집을 운영하셨던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농촌체험을 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저렇게 하면 더 안전할 것 같다’며 참견하던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프로그램 일지며 현수막을 만드는 등 어머니의 체험학습을 주도적으로 거들게 되었고, 어머니가 다니던 농업교육에 같이 참여하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여성 창업이나 농업 6차 산업 등 관련 산업의 붐이 있을 때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어머니를 따라 교육을 받다가 나이도 어리고 여자니 농업인 자격을 따보라는 말에 관련 자격도 취득하고 4-H에도 가입하게 되었어요. 2018년부터 200시간 넘게 농업 교육을 듣다가 청년창업농 사업을 시작하는 걸 봤는데, 당시 4-H에서 활동하면서 자격이 되는 여성은 저밖에 없었죠. 그래서 지원했던 것이 지금은 벌써 3년 차 청년창업농이 되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체험농업이었지만 어린아이들이 농촌에 오는 것을 보니 여러모로 즐겁고 의욕이 솟았다. 특히 보람을 느낄 때는 체험학습을 받았던 아이들의 부모님이 전화를 걸어올 때였다. 채소도 잘 먹지 않고 흙을 만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도시 아이들이 바뀌었다는 전화를 받을 때면 교육과 농촌체험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여에서 농사를 짓다가 내려오신 외할머니, 전반적인 운영을 맡고 계신 어머니와 함께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만큼 서로가 서로를 안정적으로 받쳐줄 수 있었던 것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처음 청년창업농으로 시작했을 때는 지역에서 최연소 여성농업인이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여러모로 교육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주어졌죠. 다른 지역의 승계농들도 알게 되었고요. 또 4-H 활동에서 알게 된 선배님들도 많이 도와주시면서 청년농업인으로서 한층 수월하게 자리 잡게 되었어요.”
상추밭

부여에서 농사를 짓다가 내려오신 외할머니,
전반적인 운영을 맡고 계신 어머니와 함께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만큼 서로가 서로를 안정적으로 받쳐줄 수 있었던 것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농업인 소규모 창업기술지원으로
가공사업에 도전하다

외갓집신선가 정진슬 대표
외갓집신선가에서 진행하는 사업은 1차부터 3차 산업까지 다양하다. 그중 2차 산업에 속하는 가공사업으로는 절임배추 사업이 있다. 정진슬 대표를 비롯해 가족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 배추만 해도 15,000포기에 달한다. 여기에 지역 농가와 계약재배까지 진행하는 만큼 주력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700평 부지였지만, 절임배추 사업이 순풍을 타면서 농지 임대를 늘려서 짓기 시작했다.
“원래는 매우 소규모로 했었어요. 그런데 2019년 국비 시범사업에 선정이 되면서 절임배추를 기계화할 수 있도록 가공사업장을 정비했죠. 배추를 씻고 헹구는 세척작업부터 절임배추의 물기를 제거하는 탈수작업까지 기존에 수작업으로 진행했던 부분을 기계화하면서 예상치 못한 장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새롭게 정비한 사업장에서 절임배추를 만들면서 느낀 것은 노동력이 절감되면서도 생산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장점은 절임배추를 소비자에게 출하한 뒤에 나왔다. 기존에 배추를 세척하는 과정에서는 일일이 이물질을 제거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나 버블기에서 자동으로 3차 세척까지 하고 나면 배추벌레는 물론이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나 자그마한 불순물까지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자칫 절임배추의 맛을 쓰게 만드는 소금물도 한층 깨끗하게 탈수시킬 수 있었다.
“오래 농사지으신 선배님들도 절임배추를 하세요. 그런데 생각보다 클레임이 많이 들어온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우스에서 하다 보니 이물질 유입이 상대적으로 쉽게 되고 배추를 씻는다고 해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불순물이나 나오기도 하거든요. 너무 절여져서 맛이 씁쓸해졌다고 클레임이 오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가공사업장 정비는 단순히 양적인 측면에서만 장점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직업도 편리해졌지만 품질을 높게 평가받아 판매처도 늘어나게 되었지요.”
대외활동을 통해 납품처를 늘린 것도 절임배추사업에 순풍으로 작용했다. 너무 먼 지역으로 보내기에는 맛과 신선도가 떨어질 수 있어 최대한 지역 내에서 소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중 신탄진조합, 대전 개인마트와는 납품 계약까지 맺어 한층 많은 사람들에게 외갓집신선가의 절임배추를 선보이게 되었다. 또한 올해부터 생긴 마을자치회를 통해 주민센터와 연계해 납품하기도 했다. 이렇게 올린 수익은 최소 5년 차까지는 재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농장 개선에 투자하고 있다.

소규모 체험과 로컬마켓으로 헤쳐나간다

지난해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외갓집신선가를 찾은 사람들은 한 달에 약 500명에 달했다. 계절마다 제철 농산물을 심거나 수확하는 체험을 할 수도 있었고, 봄에는 한과 체험, 여름에는 물놀이 체험을 함께 할 수 있어 1년 동안 계속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체험을 진행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했다.
“올해 9월에 진행했던 송편 만들기는 재료를 배달해드리고 정해진 시간에 라이브 방송과 설명서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민속놀이도 놀이 용품을 전달해드리는 식이었고요. 현장에서 체험을 하는 경우에는 하루에 한 팀만 받고, 체험하는 동안에도 마스크 착용은 꼭 지켰어요. 손 소독이나 체온측정 등 기본적 방역수칙을 지키고 체험을 마친 다음에는 교육 장소와 사용 기구들을 전부 소독했지요.”
이렇게 체험을 진행하며 농산물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미처 다 소진하지 못한 작물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여름 감자다.
기존에는 감자 수확 체험으로 대부분 소화했던 것이 대거 남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구제할 수 있었던 것은 대전광역시의 로컬푸드 인증제도인 ‘한밭가득’이었다. 정진슬 대표는 살충제나 제초제를 쓰지 않고 감자밭을 가꾸었는데, ‘한밭가득’의 약품 검출기준을 통과하면서 전량 로컬푸드마켓으로 납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납품한 감자는 어린이집으로 보내지는 꾸러미에 포함되어 어린이들이 섭취하게 되었다.
“원래는 제가 알레르기가 심해서 약품을 치지 않고 안전하게 재배했던 것인데 이제는 생산자로서 안전한 먹거리를 납품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어요. 사실 코로나19처럼 체험 자체가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농촌체험교육이 어린이들에게 중요하고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죠. 마을에서도 적극 도와주시고 계세요. 그래서 단순히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마을 발전을 같이 꿈꾸고 후배 농업인들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되도록 ‘함께 가는 농업’을 실천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예요.”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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