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중요농업유산 제2호
제주밭담

글 ㅣ 이승호자료 ㅣ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와 제주만의 특별한 멋을 전하는 오름,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제주 올레까지
제주도는 다채로운 모습으로 찾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섬이다.
제주도를 찾아 여행을 즐기다 보면 제주도 특유의 돌담을 쉽게 볼 수 있다.
돌하르방과 함께 제주 풍경의 상징인 이 돌담의 명칭은 제주밭담.
국가중요농업유산이자 FAO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된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제주 선인들 삶의 의지와 지혜가 아로새겨진 제주밭담,
그 속에 담긴 의미와 문화 가치에 대해 알아본다.

제주밭담의 시작

제주도 해안가를 따라 섬 전역에는 밭담이 꽉 들어차 있다. 질서도 없고 고르지도 않지만, 나름의 멋을 자랑이나 하듯 물길, 발길 비켜가며 밭과 밭을 이어 나간다. 1,0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제주 선인들의 노력으로 한 땀 한 땀 쌓아 올려진 제주밭담은 어떠한 연유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그 시작은 제주도의 농업 성장과 관련이 있다. 제주도에서 농업 활동이 시작된 것은 탐라국(제주에서 활동했던 옛 국가) 시대인 A.D.1~1105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초기 농업은 주거정착과 함께 윤경화전(輪耕火田)을 확대하는 형태의 화전경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제주도는 화산활동으로 인해 산과 들은 물론 바다까지도 돌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해안 지역을 따라 비교적 비옥한 토지인 비화산토 지역에서 경작이 이루어졌다. 인구가 점차 늘면서 정주 지역의 범위가 중산간지대로 확대되면서 경작지를 확대하는데 이때 마주한 첫 번째 난관은 섬 전역에 펴져 있는 수많은 돌이었다.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돌 때문에 경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하며 땅을 일구니 바로 두 번째 난관이 찾아왔다. 바로 바람이었다.
제주도는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섬으로 대양과 접해 있다. 대양과 접해 있다는 것은 바람이 강하게 불어올 수 있는 위치라는 의미이다. 이곳의 바람은 평균 117일가량을 초속 10m의 속도로 불어 작물을 기르기에 최악의 조건이었고 수확량 또한 매우 적었다. 제주하면 돌과 바람이란 말도 이때 나온 말이다. 제주 선인들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강한 바람에 대비한 생활이 부득이했다. 바람을 극복하기 위해 경작 과정에서 나온 돌들을 담처럼 쌓기 시작했다. 농경지에서 먼 곳으로 옮기기보다는 그 주위에 쌓는 편이 훨씬 쉽고 노동력도 덜 들어가 농경과 밭담은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었다. <증보탐라지>에서도 밭담의 방풍 역할을 언급하고 있다.
제주밭담과 오름

제주밭담과 오름

제주밭담 전경

제주밭담 전경

정주형 방목 문화의 산물

제주밭담은 돌과 바람이란 문제점을 해결 외에도 또 다른 목적에서 유용하게 이용됐다. 제주도에는 세계 인류 생활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정주형 방목 문화가 존재했다. 일정한 마을에 거주하면서 농경과 함께 마소를 방목하는 독특한 형태의 문화이다. 이런 삶의 방식은 밭담 탄생으로 인해 또 다른 효과를 가져왔다.
마소의 방목이 마을별로 이루어지면서 마소가 밭에 침입해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마을 간의 분쟁 소지가 되었으며, 한 해 농사를 수포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밭담이 쌓이면서 이러한 문제는 한 번에 사라졌다. 조선조 제주목사 이원조의 〈탐라지초본〉에는 “반드시 돌을 모아 담을 둘러 우마를 막았다.”라는 기록도 있다. 이증의 <남사일록>에 나타난 1679년의 기록에도 “밭 끝 사방에 주먹만 한 돌들을 둘러쌓아 소와 말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다.”라고 하여 밭담과 목축의 연관성을 언급하고 있다.
제주밭담은 토지의 경계를 나타내는 의미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234년 제주판관 김구의 지시에 의해 농지와 관련한 재산권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경계용 밭담을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힘센 자들이 약한 자들의 땅을 빼앗아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는 제주 전역에 밭담이 고루 확산하는 배경이 되었다.
제주밭담의 구조

제주밭담의 구조

제주밭담의 기능

제주밭담의 기능

제주밭담에 담긴 특별한 매력

오랜 세월 동안 제주도에 밭담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밭담은 제주의 상징으로 제주도 전역을 모자이크처럼 수놓았다. 그렇다면 제주밭담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연구에 따르면 제주밭담의 총 길이는 22,108km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의 둘레가 대략 40,000km이니 제주도 전역의 밭담을 일렬로 세우면 지구 반바퀴를 돌고도 남는 길이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밭담을 두고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부르기도 한다. 검은색을 띠고 있는 현무암의 밭담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구불구불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흑룡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한 폭의 거대한 그림을 연상시키는 제주밭담은 바라보고 있자면 농업문화유산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제주밭담은 제주선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의 산물이다. 밭담의 구조와 유형을 보면 그러한 이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밭담을 능숙하게 쌓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밑돌을 놓는 방법이나 돌들이 서로 이가 맞도록 엇갈리게 쌓는 기술이 그러하다. 올려놓을 돌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핀 후 이가 맞다 싶으면 세차게 내려놓아야 한다. 이는 오로지 경험으로 축적된 숙련만이 비법이라 할 수 있다.
돌의 크기나 모양을 다른 돌들을 고루 섞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돌과 돌이 이음새 역할을 해 견고한 담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제주밭담은 돌만으로 짜이기 때문에 바람에 의해 어느 한쪽이 무너져도 돌담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다. 설령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만을 쉽게 보수할 수 있기 때문에 관리 측면에서도 편리한 것이 제주밭담의 구조적 특성이다.
제주밭담을 통해 재배되는 농작물은 시대적 흐름과 트렌드에 따라 다소 변동이 있지만, 지역 토양 특성과 밭담 높이 등을 고려해 지역 환경에 적합한 작물이 주로 재배되고 있다. 과거부터 제주 농업의 특징은 논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밭농사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그 환경이 척박해 산도(山稻), 기장, 피, 조, 콩, 팥, 메밀, 보리, 밀 등이 주로 재배되었다. 현재는 화산회토에서 주로 무, 감귤 등이 재배되고 비화산회토에서는 마늘과 양배추가 재배되고 있다. 그리고 화산회토 중 모래땅에서는 당근이 주로 재배된다.
흑룡만리 제주 밭담

흑룡만리 제주 밭담

토양 특성 및 주요 재배 작물

토양 특성 및 주요 재배 작물

밭담의 미학(유채밭과 보리밭)

밭담의 미학(유채밭과 보리밭)

제주밭담이 가진 다양한 가치

제주밭담은 농업적 가치 이외에도 제주의 미학을 대표하는 빼어난 문화경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흔히 부드러운 곡선의 아름다움은 제주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구불구불 제주 전역을 휘감고 있는 밭담은 제주의 미학의 상징으로 형형색색의 꽃이나 농작물과 어우러지며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이러한 비경은 현무암으로 구성된 제주밭담만이 담아낼 수 있는 풍경으로 독창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해안가에서부터 중산간까지 제주도를 띠처럼 두르고 있는 밭담은 그간 중산간지대의 난개발을 막는 장치로 작용해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는 역할도 해왔다. 제주밭담은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의의가 크다. 이는 후대들에 전해줄 교육적 가치와도 일맥상통하는데 제주밭담은 척박한 자연환경과 맞서 싸운 삶의 역사이자 생존을 위한 버팀목이었다. 따라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며 살아온 여정을 담은 독특한 유산으로 그 가치가 크다.
매번 여행으로 찾게 되는 제주도. 그곳은 즐길 거리만 가득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 조상의 얼과 지혜가 담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제주밭담은 국가중요농업유산이자 FAO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우리 농업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이제 제주도를 찾게된다면 제주밭담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뀔 것이다. 그리고 제주밭담은 단순한 관광요소가 아닌 하나의 문화재로서 제주도를 찾는 이에게 새로이 다가올 것이다.
흑룡만리 제주 밭담

흑룡만리 제주 밭담

흑룡만리 제주 밭담

흑룡만리 제주 밭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