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씨앗을 만나다,
맛을 만나다

가배울 토종식당 김정희 상임이사

글 ㅣ 김희정사진 ㅣ 전예영·황성규
2008년 가배울 김정희 상임이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라남도 강진이라는 지역과 끈끈한 연을 맺어가고 있었다.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양성평등 지역문화 확산사업 프로젝트의 연구 책임자를 맡게 되면서
전국 각지 여성단체의 여성활동가를 많이 알아가던 당시, 특히 눈길을 끄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2009년 강진문화원에서 강진 출신 여성 국악인 함동정월의 일생을 연극 무대에 올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컨설팅하면서 빈번하게 강진을 드나들었던 것이 토종 종자를 활용해 식문화를 꾸려나가는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

마을 전체가 토종 농사꾼,
한국인의 밥상을 보다

가배울 토종식당 김정희 상임이사
문화체육관광부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지켜왔던 것이 어떤 지역으로 출장을 갈 때는 그 지역의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양한 지역의 백반 맛을 보아도 강진 달마지 마을의 밥맛은 뭔가 달랐다.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직접 담근 된장 맛이 떠오르는 깊은 맛이었다. 그 맛의 원천은 마을 전체가 토종 종자로 농사를 짓는다는 점이었다. 상추, 부추, 깻잎, 백태 등 20가지 가량의 종자들이 오랜 시간 농부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제게는 토종 종자들을 이어나가는 것이 곧 농민 여성들이 일궈온 문화유산을 이어나가는 것과도 같아요. 1980년대 중반만 해도 통일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농가에서 심는 건 농가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친정어머니가 딸에게 물려준 씨앗이었거든요. 농사 자체가 여성에 의해 발견되고 발명되었다는 것도 학계의 정설이고요. 그런 점에서 토종 종자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마을 단위로 있다는 점은 제게는 큰 발견이었어요.”
이 토종 종자들로 농사를 짓는 것이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김정희 상임이사는 2010년 가배울을 조직하고 2013년부터 토종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매달 제철 토종 농산물을 보내는 꾸러미 사업, 가공품 개발비를 후원받아 가공품으로 돌려주는 토종농사 문화 살리기 캠페인을 통해 토종의 맛을 소비자에게 알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어려움으로 다가온 것은 달마지 마을이 고령화되면서 토종 종자들이 멸실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달마지 마을의 할머니들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농사를 지으시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종류를 줄여가세요. 젊었을 때는 밭에서 20가지 종자를 돌려가며 농사를 지었다면 80대에는 한두 가지만을 마당에서 기르는 텃밭 농사만 하시는 식이죠. 그 종자를 미리 갈무리해놓고 물려주지 않으면 토종 종자 자체가 할머님들이 돌아가시면서 그대로 잊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눈길을 돌려서 전국에서 토종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찾은 거예요. 지금은 전국에서 다양한 토종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생겨나서 가배울에서도 토종 농산물 판매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죠.”
가배울 토종식당
가배울 토종식당

토종농사,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린다

처음 김정희 상임이사를 토종 종자 지킴이로 입문하게 만든 것은 종자 자체의 맛이었다. 그러나 토종농사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느낀 것은 토종 종자로 농사를 짓는 것이 생태계를 지키는 또 다른 길이라는 점이었다. 당장 종자 주권을 살리고 생물 다양성을 지킬 수 있다고 하면 해당 작물의 생물 다양성만 떠올리기가 쉽다. 그러나 토종 종자로 살릴 수 있는 생태계는 더 복합적이다. 살충제를 코팅한 씨앗이 아니다 보니 땅에 사는 미생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종자의 수분을 도와주는 벌과 나비도 삶을 지속해나갈 수 있다. 전 세계 곡물의 75%가 번식하는 데 꿀벌의 도움을 얻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꿀벌의 생존이 인류의 식량 위기를 막아주는 한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배울 토종식당
가배울 토종식당
“살충제를 코팅한 씨앗들은 자연적으로 수분하는 것이 어려워요. 거기다가 종자 회사에서 개발한 종자들은 세대가 내려갈수록 열성인자가 발현되기 때문에 씨앗을 받아 다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종자회사에 계속 돈을 내고 새 종자를 사와야 해요.
이렇게 살충제와 제초제를 코팅한 씨앗을 계속 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성분이 땅에 스며들게 된다. 꾸준히 종자회사에 돈을 내고 농사를 짓는 것은 결과적으로 땅에 계속 유해물질을 축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희 상임이사는 소농들의 토종 농사를 단순히 먹을 것을 생산하는 활동이 아니라 문화로 생각하고 지켜나가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토종 종자로 농사를 짓는 경우에는 관행농처럼 다량 수확하는 것이 어려워요. 다른 지역에 심었을 때는 그 지역에 적응하는데 몇 년이 걸려요. 또 기후가 극심하게 변화하면 거기에 영향을 심하게 받기도 하고요. 작년에는 가배울과 네트워크 생산자들의 토종 참깨와 들기름을 선주문을 받았었는데, 작황이 최악이었어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깨가 제대로 영글지를 못했거든요. 다들 씨앗만 간신히 건졌어요. 하지만 이렇게 기후변화를 극복한 씨앗들은 그 기억을 보존하고 적응해나가면서 스스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렇지만 이 종자로 농사를 지었던 농부들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단순히 먹을 것을 생산하는 산업으로만 보면 이런 다양성을 지켜나갈 수 없어요.”
가배울 토종식당

기후변화를 극복한 씨앗들은
그 기억을 보존하고 적응해나가면서
스스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토종의 확산,
함께 하는 사람들이 원동력이다

가배울 토종식당
가배울은 잠재적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크라우드 펀딩, 스마트 스토어 오픈, 카카오 채널을 통한 꾸러미 배달 등의 다양한 채널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에 개장식을 한 강진의 가배울 토종식당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토종 종자를 알리고 활용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토종식당을 담당하고 있는 윤영임 실장은 다양한 레시피를 개발하고 여러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한 경험이 있어요. 토종 종자의 특색 있는 맛을 한층 살리고 있지요. 방문하시는 고객 분들의 반응도 무척 좋습니다.”
토종 종자 1년치를 확보하고 다양한 요리를 준비했지만, 사람들이 방문하기 힘든 환경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텀블벅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음식을 배송하기도 한다. 귀한 종자를 활용해 만든 음식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맛보이고 외연을 넓히기 위함이다.
“식당은 월요일, 화요일에만 쉬고 다른 날은 예약 위주로 진행하고 있어요. 식재료가 부족하다고 해서 시장에서 바로 사다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요. 예약제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하루 전에만 예약해 주시면 원재료의 풍미를 살린 손맛 좋은 요리를 준비해 드려요. 비건이신 분은 미리 말씀하시면 조선간장이나 채수로 요리를 해서 만들어드리다 보니 채식하시는 분들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에요.”
이제 김정희 상임이사가 꿈꾸는 것은 가배울을 좋은 일자리를 지닌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어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이다. 여행가 한비야가 월드비전에서 구호활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사회적 어머니’로 일컬었던 것처럼 가배울을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사회적 어머니와 청년들이 모이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당면 목표다. 요리에 관심 있는 탈학교 청소년들이나 비건 청년들에게 토종음식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이 목표에 포함된다. 다양한 토종의 맛을 살리고 사람과 생태계를 살리는 실험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가배울 토종식당
주소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두원길 45
연락처 : 0507-1316-4481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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