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의 도약
국산화를 넘어
고품질 다양화로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
채소과 김대영 농업연구관

글 ㅣ 하우람사진 ㅣ 황성규
부드러운 식감과 새콤달콤한 맛을 지닌 딸기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과일의 여왕’이다.
2005년 당시 90% 이상의 종자가 일본 품종이었던 딸기는 오늘날 90% 이상 국산화에 성공하며 농가소득을 견인하고 있다.
불과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국산 딸기는 어떻게 판도를 뒤집은 걸까?
농촌진흥청 김대영 농업연구관을 만나 ‘딸기의 도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한민국의 ‘딸기독립’을 이끈
국산품종 ‘설향’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 채소과 김대영 농업연구관
“한국산 딸기가 정말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내가 가장 좋아한 간식이었다.”
2018년 개최된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일본 여자 컬링대표팀 스즈키 유미 선수의 인터뷰는 한국과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됐다. 당시 카메라에는 하프타임 때 딸기를 먹는 일본 선수들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 선수의 솔직한 감상은 이후 딸기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신경전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스즈키 선수가 감탄한 우리나라 딸기가 바로 ‘설향’이다. 우리나라 딸기의 역사는 설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향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2006년 한·일간 로열티 협상 당시 우리나라는 연간 30억 원 내외의 로열티(품종사용료)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자 농촌진흥청은 딸기 주산지의 도농업기술원, 시·군 농업기술센터 등과 ‘딸기연구사업단’을 구성하여 딸기 신품종 개발과 보급 및 맞춤형 재배 기술을 개발하며 꾸준히 국산화가 진행됐다.
“설향은 2005년 논산딸기시험장에서 김태일 전 시험장장님을 중심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이후 딸기연구사업단을 비롯한 농촌진흥기관, 농가들이 합심하여 오늘날과 같이 널리 보급된 거죠. 10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이루어진 급격한 시장 변화는 한두 사람의 성과물이 아닙니다. 훌륭한 품종인 설향의 연구개발이 있었고,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보급한 이들이 있었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품종을 키워보고자 노력한 농가들이 있었던 거죠.”
오늘날 딸기는 겨울철을 대표하는 과일이 되었지만, 2005년까지만 해도 이른 봄철이 되어서야 수확할 수 있는 ‘봄 과일’이었다. 겨울부터 딸기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설향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이후부터다. 설향(雪香)은 ‘눈 속의 향기’라는 이름 그대로 겨울철 달콤한 향기로 대한민국 딸기 시대를 열게 됐다.
“국내에서 설향만을 재배한다면 향후 급격한 트렌드의 변화로 소비자에게 외면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때문에 당장은 설향보다 점유율이 떨어진다고 해도 꾸준한 연구개발은 필요합니다. 외연확장뿐만 아니라 향후 10년, 20년을 내다보았을 때 중요한 일입니다.”
김대영 농업연구관은 고품질 차별화 전략의 사례로 전남 담양의 농가에서 재배하는 ‘죽향’을 예로 들었다. 죽향은 재배가 어렵고 수량이 적지만, 봄철 고품질 딸기로서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마찬가지로 최근에 개발된 ‘킹스베리’, ‘금실’, ‘아리향’ 등도 품종의 특성을 반영한 재배법을 찾고 차별화된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개척한다면 딸기 산업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 채소과 김대영 농업연구관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 채소과 김대영 농업연구관

고품질 다양화로
딸기 산업의 외연 확장

설향은 과실이 크고 당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신맛까지 적절이 어우러져 새콤달콤한 맛을 낸다. 또한 과즙이 풍부하여 한입 베어 물면 느껴지는 상큼한 식감이 일품이다. 재배 농가에서는 흰가루병에 강하기 때문에 친환경재배가 가능하고 수량 또한 으뜸이기도 하다. 밸런스가 잘 맞는, 딸기 품종 중의 ‘팔방미인’이라고 할만하다. 때문에 국내 딸기 재배면적 중 88% 정도에서 설향이 재배되고 있다.
“설향이 우수한 품종이라는 건 명백하지만, 완벽한 품종은 아닙니다. 때문에 저를 비롯한 많은 육종가들은 새로운 품종을 연구하고, 보다 나은 품종을 개발하여 대한민국 딸기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설향과는 차별화된 고품질의 다양한 품종을 개발하여 우리나라 딸기 산업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하는 노력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품종에만 안주한다면 언제든 2005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김대영 농업연구관의 설명이다. 하나의 품종을 연구개발 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7년, 많게는 15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지금도 딸기 품종을 연구하는 많은 연구소에서는 설향의 장점을 계승하고 단점을 보완한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설향
설향

설향을 넘어서
제2의 도약을 꿈꾸며

국산 품종 설향이 보급되며 일본과의 로열티 분쟁은 해소됐지만, 새로운 딸기를 개발하는 육종가들에게 설향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로열티 현안 해소와 국산 품종 보급률 제고는 우리나라 딸기산업 제1의 도약기였다. 향후 딸기 산업 제2의 도약기를 열기 위해서는 우수한 신품종의 개발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딸기 대표 품종인 설향도 초창기에는 농가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것도 딸기냐? 너무 무르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수많은 농가들 중에서 설향을 제대로 재배한 곳은 단 1곳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품종이 어떻게 딸기 시장의 판을 바꿀 것인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습니다. 저를 비롯한 육종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하며 제2의 도약기를 준비하고 있죠.”
기존에 재배되는 품종보다 맛있고 수량 많고 병에도 강하며 재배가 수월한 품종을 개발하는 것은 모든 육종가의 꿈이자 풀어야 할 큰 숙제다. 당장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끈기 있게 연구개발에 매진해야 한다. 김대영 농업연구관 역시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딸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다양한 종자를 보며 자란 ‘모태 연구원’이다. 2004년 농촌진흥청에 임용되어 2005년부터 지금까지 딸기만을 연구한 ‘딸기 외길인생’이기도 하다.
“제가 한 일은 그저 딸기품종을 연구하는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것뿐입니다.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우리나라 딸기 산업의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겠습니다.”
수많은 딸기 품종의 변화를 지켜봐야 하는 육종가들에게는 안목과 관찰능력이 중요하다. 김대영 농업연구관과 딸기 육종가들은 딸기 산업 제1의 도약기를 지켜봐 왔다. 또한 딸기 산업의 판도를 바꾼 품종의 힘을 현장에서 느껴보기도 했다. 이들의 경험과 연구개발은 딸기 산업 제2의 도약기를 열어갈 것이다. 우리나라 딸기 산업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우리나라 딸기 산업의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겠습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 채소과 김대영 농업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