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보리를
구매할 때
품종
확인해 주세요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박종호 연구사

글 ㅣ 김주희사진 ㅣ 황성규
식량이 부족했던 1960년대까지 우리 국민들은 보릿고개를 넘어야했다.
보릿고개는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올해 농사지은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의 시기를 의미한다.
지금과 같이 먹을 것이 풍족한 시대에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다.
이러한 보릿고개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당시 우리의 주 식량 중 하나는 보리였다.
하지만 현재 보리는 다양한 품종이 개발되면서 주로 음료, 효소, 맥주, 사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박종호 연구사를 만나 보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사료용으로 사용되는
청보리

농촌진흥청 국립과학식량원 작물육종과 박종호 연구사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파릇파릇한 청보리밭을 만날 수 있었다. 보리연구팀이 품종 개발을 위해 다양한 보리 품종을 심고 가꾸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식량과학원 안에 조성된 보리밭과 비닐하우스에서는 생김새도 크기도 다른 보리들이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다.
“규모가 꽤 크죠?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고창이나 가파도에서 열렸던 청보리축제가 취소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청보리를 즐겨 보세요.”
밝게 웃으며 보리밭을 소개하는 작물육종과 박종호 연구사에게서 보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보리를 연구한지 8여 년, 그는 사료용으로 사용되는 청보리를 주로 연구·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육종은 한 사람이 할 수 없기 때문에 팀 단위로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 보리의 주 용도는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밥에 같이 넣어서 먹는 혼반용, 식혜, 블랙보리 음료, 보리떡, 보리빵 등을 만드는 가공용, 맥주를 만들 때 이용하는 맥주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료용과 경관용으로 사용되는 청보리가 있고요.”
박 연구사가 육종가로서 참여한 품종 중 하나는 보리의 뾰족한 까락 부분을 퇴화하게 만든 ‘유진’이 있다. ‘유진’은 가축의 겨울 먹이로 말리지 않은 채 저장하는 풀인 사일리지를 만들 때 발효 품질이 기존 품종보다 좋으면서 부드럽다는 특징이 있다. 까락이 뾰족하지 않아 소들이 기침하지 않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어 농가에서 최근 선호도가 높은 품종이다.
“‘유진’은 초기에 개발된 ‘영양’ 품종을 대체하기 위해 국립식량과학원에서 개발하고,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 통상실시를 했습니다. 최근에 품종 등록을 마쳤고 현재 약 100톤가량이 보급된 상태입니다. 소규모로 재배할 때 유리한 품종으로 향후 더 확대 보급할 계획입니다.”
사료용은 보리 품종 중 가장 마지막으로 개발된다. 사람이 섭취할 수 있는 보리의 양이 일정 부분 채워지면 사료용으로 개발되는데, 병에 강하고 수량도 많아야 하는 특징이 있다. 사료용이 보리 품종 개발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청보리를 먹인 한우들이 나오는데 육질이 부드럽고 마블링 색이 좋다고 합니다.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것이죠. 또한 축제용이나 경관용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요. 고창청보리축제에 가면 키가 크고 파릇파릇한 청보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기능성 성분이 풍부한
보리 품종 개발

보리의 전성기를 수량을 기준으로 한다면 1960년대라고 할 수 있다. 70~80만ha가 재배되었으니 수량이 엄청났을 거라고 쉽게 예측해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쌀이 자급되면서 지속적으로 면적이 줄다가 지난해 기준으로 재배면적 43,719ha, 생산량 136,915톤이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보리의 다양한 활용을 기준으로 한다면 지금이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보리 품종이 개발되면서 음료와 맥주, 효소 등으로 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겉보리는 ‘큰알보리1호’와 ‘혜미’가 주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논에서 재배되기 쉽고 수량이 많으며 병해에 강한 특성이 있는데요. 보리차나 식혜용으로 주로 이용됩니다. 최근에는 건강기능성이 풍부한 새싹보리 분말 등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웰빙식품으로 색깔보리가 인기를 끌면서 자색보리인 ‘보석찰’, ‘자수정찰’, 흑색보리인 ‘흑누리’, ‘흑보찰’, 청색보리인 ‘강호청보리’가 국내외로 활발히 보급·수출되고 있습니다.”
이중 흑색보리인 흑다향은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 함량이 일반 보리보다 1.2배가량 많고, 새싹에 기능성 성분이 많아 보리차와 새싹보리용으로 보급되고 있다. 가공식품으로 개발된 블랙보리 음료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모으며 판매량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보리밭
“현재 해외에서도 보리가 건강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유색보리는 혼반용으로 해외에 수출되고 있고, 새싹보리와 블랙보리 가공품도 일본 등에 수출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베타글루칸 함량이 11.4%로 일반 보리보다 약 2배 정도 높은 ‘베타원’ 품종을 이용해 혈당조절 간편식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기상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아 재배안정성이 보강된 누리찰쌀보리와 추위에 강한 재안찰쌀보리가 혼반용으로 재배 보급되고 있으며, 내한성과 내도복성(비바람에 견디어내는 성질) 등이 향상된 ‘광맥’이 맥주보리로 많이 재배되며 다양한 품종들이 활용되고 있다.

소비자가 알아야
생산자도 바뀐다

작물육종과에서는 보리의 기능성 강화와 다양한 품종 개발을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교배 후 포장에서 형질 평가를 통해 선발하는 전통육종이 주였다면 앞으로는 보리의 특성이 모두 담긴 유전자집단을 구축해 원하는 유전자를 필요한 보리에 넣을 수 있는 육종을 진행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보리 유전자 핵심 집단(Core Set)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보리 유전자원의 기능성 성분 분석을 통해 기능성 성분이 강화된 보리 품종 개발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최신 트렌드에 맞는 보리 품종의 개발도 필요한데요. 국내에서 수제맥주가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무늬만 국산 수제맥주가 아니라 주원료인 맥주보리도 국내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품종 판별 마커 개발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 개발과 병행되어야 하는 건 소비자들이 보리를 소비하는 일이다. 소비자들이 보리에 대해 바로 알고 이용해야지만 더 좋은 품질의 보리들이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쌀은 품종에 대한 홍보가 잘 되어 있어서 소비자들이 구매하실 때 품종을 확인합니다. 신동진, 일미 등 원하는 쌀을 구입하는 것이죠. 그런데 보리는 그냥 보리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리도 쌀과 마찬가지로 품종을 확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존의 단점을 개선한 품종들이 계속 개발되고 보급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알면 유통업자가 바뀌고 생산자도 바뀌면서 더욱 좋은 품종들이 재배·보급될 수 있습니다. 보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농촌진흥청 국립과학식량원 작물육종과 박종호 연구사

보리 유전자원의
기능성 성분 분석을 통해
기능성 성분이 강화된
보리 품종 개발을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