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맛닭,
토종닭의 부활을
꿈꾸다

글 ㅣ 김주희자료 ㅣ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영화 <집으로>에서는 귀가 안 들리는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닭을 푹 고아서 백숙을 만들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일반 농가에서는 기본적으로 달걀을 얻기 위해 닭을 길렀다.
그런 닭을 잡아 요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그만큼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는 의미가 컸다.
오랜만에 딸과 함께 온 사위에게 토종닭을 잡아 음식을 해주는 것도 각별한 의미를 담은 차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뒤 토종닭은 달걀을 적게 낳는다는 이유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다.
2008년부터 이루어진 농촌진흥청의 우리맛닭 기술 이전은 이런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토종닭의 품종을 보존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식량 자급률과 축산농가의 소득에도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채산성에 밀려난 전통,
토종닭이 사라질 뻔한 이유

우리나라 닭고기 산업은 상당 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순살치킨에 쓰이는 닭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키우고 유통하는 닭의 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원종계(씨닭)도 90% 이상 수입해온다. 미국의 코브반트레스, 네덜란드의 아비아젠, 프랑스의 하바드 등 육종기업에서 수입해오는 종자는 마리당 약 4만 원에 달한다. 2018년에는 약 40만 7,000마리가 수입되었으니 100억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한 셈이다. 종자전쟁이라는 말이 결코 과하지 않은 이유다.
이렇게 외국산 품종이 시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된 이유에는 역사적 굴곡과 낮은 산란능력에 있다. 천마총에서 1500여 년 전의 달걀이 출토될 만큼 우리나라의 양계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산란수가 적고 성장이 더뎠다.
일제강점기 때 양계업이 활성화되면서 일본에서 들여온 개량종에 한 번 밀려난데다 6·25전쟁으로 인해 토종닭의 개체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전쟁 후 복구사업의 일환으로 육계 전용종이 미국에서 수입되면서 토종닭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닭 이미지
문제는 해외 육종기업에서는 원종계의 한쪽 성별의 병아리만 판매하기 때문에 번식이 불가능하고 원종계를 1회용처럼 한 번만 쓰니 도태할 수밖에 없다. 수입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종계의 해외 예속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고, 유사시에는 식량 안보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이에 따라 고유 종자를 확보하고 이를 해외에 유출되지 않게 보호하는 것은 경제적인 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식량 주권에 있어서나 안보적인 측면에서나 큰 의미를 가진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농촌진흥청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은 재래닭의 품종을 복원하고 닭고기 산업에 적합한 실용계를 생산하기 위해 1992년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1992년에는 축산기술연구소 대전지소에서 기초자원 수집과 복원사업을 진행했다. 1994년에는 농림부, 축산기술연구소, 양계협회, 서울대, 충남대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재래닭 육용화연구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08년부터는 토종 우리맛닭1호 종계 보급이 시작되었고, 2011년부터는 토종 우리맛닭2호 종계 보급이 시작되었다.

재래종 보호를 위한
노력들

닭 이미지
보통 토종닭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 안에서도 의미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다른 품종과 섞이지 않고 순수 혈통을 유지한,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사육되었던 재래종이다. 다른 하나는 외국에서 품종이 개발되었지만 국내에 순계가 도입되어 7세대 이상 그 특징을 유지하고 우리나라 기후와 풍토에 완전히 적응한 토착종이다. 이러한 순수 혈통인 순계를 이용하여 목적에 따라 종계를 만들고, 종계를 이용하여 일반 농장에 출하하는 것이 실용계이다. 우리가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하거나 음식점에서 먹는 닭은 모두 실용계에 해당한다.
재래닭이 그나마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명감으로 재래닭을 키워온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1992년 재래닭 품종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토종닭 5품종 12종을 복원할 수 있었으나 2014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위기를 맞았다. 당시 국립축산과학원 가금과에서 보유 중이던 복원 품종들은 모두 살처분되었다. 다행히 남원에 있는 가축유전자원센터에 보유 중이던 종들로 복구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농촌진흥청에서 보유한 토종닭 순계는 재래종인 5계통의 재래닭부터 토착종인 코니쉬, 로드아일랜드레드, 화이트레그혼 등 다양한 품종을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경기도 파주의 현인농원, 경상북도 영양의 닭실재래닭연구소 등에서 재래닭을 유전자원으로서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

새로운 품종 개발에서
보급까지

이렇듯 재래닭을 개량해 토종닭으로 키워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백세미, 노계, 유색계 등이 토종닭으로 둔갑하면서 토종닭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이 사실이다. 이를 방지하고 양계업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혈통이 확실한 토종닭을 보급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재래종은 기름기가 적고 콜라겐이 풍부해 육질이 쫄깃하고 감칠맛이 좋으나 상대적으로 사육 기간이 긴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에서 만들어낸 품종이 우리맛닭1호다. 순계로는 총 3가지 종자가 쓰였는데 빨리 성장하는 종자, 맛이 좋은 종자, 알을 잘 낳는 종자가 선발됐다. 성장이 빠른 수컷 종계와 맛이 좋고 달걀 생산이 많은 암컷 종계를 키운 뒤 이 둘을 교잡해 맛이 좋고 성장이 빠른 토종닭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다.
2010년에 개발된 우리맛닭2호는 육질은 유지하면서 성장을 보다 빠르게 하는 데 중점을 두어 개발했다. 현재 우리맛닭2호의 성장 속도는 우리맛닭1호보다 30%가량 빠르며 육질이 더 부드럽다는 장점이 있다. 이와 함께 우리맛닭 품종 개량이 꾸준히 이루어지는 만큼 보다 다양한 목적에 맞춘 토종닭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육계사 내부시설

육계사 내부시설

닭 이미지
그러나 여전히 숙제는 있다. 토종닭의 판로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토종닭 전문식당에서 백숙과 삼계탕으로 토종닭이 쓰이는 이상 대부분의 수요가 여름에 집중된다. 많은 사람들이 계절과 상관없이 즐겨 찾는 치킨에는 대부분 수입산 육계가 사용된다. 토종닭에 비해 조직이 성글고 맛이 싱겁지만 가격이 싼 데다 시즈닝의 맛이 치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제한적인 판로를 극복하고 사계절 내내 사랑받는 토종닭을 위해 조리법 세미나와 마케팅 등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토종닭협회 홈페이지에서는 닭스테이크, 닭볶음탕 등 토종닭으로 만들 수 있는 20여 가지의 조리법을 제공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미얀마,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수출된 종계와 실용계 종란도 고무적인 사례다. 한때 사라질 뻔했던 토종닭이 품종 개발과 소비 확대를 위한 노력으로 다시 날개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맛닭1호

2008년부터 보급이 시작된 첫 번째 토종닭 실용계다. 기존 재래닭에 비해 성장하는 속도가 80% 이상 빠르다. 재래닭은 20주가량을 키워야 1.8kg의 무게가 나오는데, 우리맛닭1호는 10주 정도면 같은 체중에 도달할 수 있다. 보통 육계에 비해 콜라겐과 글루타민산 함량이 높아 국물요리에 사용해도 퍽퍽하지 않고 감칠맛이 좋다. 백숙용으로 적합하다.

우리맛닭2호

삼계탕 전용으로 만들어진 토종닭 실용계다. 우리맛닭1호에 비해 약 30%가량 성장 속도가 빠르다. 우리맛닭1호는 초기 성장속도가 느려 12주령의 닭을 삼계탕용으로 썼는데 살코기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이를 개선한 우리맛닭2호는 5주령에 생체중 750g 내외로 자라 삼계탕용으로 적합하다. 다리나 가슴 등의 살붙임이 좋고 부드러워 10개월 이상 사육하면 백숙은 물론 훈제, 닭갈비, 닭볶음탕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