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 고향,
정들면 고향

- 영화 <장수애인>

글 ㅣ 김희정사진 ㅣ 영화 <장수애인> 제공
귀농귀촌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전의 인연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게 된다.
각자 다른 인생사를 품고 내려온 사람들이 인연으로 묶이게 되는 것은 공통적인 관심사를 함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장수군에서 중동문화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행복한 영화교실 ‘다큐’ 프로그램」은 제각기 다른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장수애인>이다.

다큐멘터리로 들여다보는
마을 구성원들의 이야기

영화 장수애인
<장수애인>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장수군에서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왜 살아가는지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 때는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등을 잔잔하게 말하는 모습이 쭉 이어진다.
카메라 앞에서 크게 긴장하거나 삶의 편린을 내보이는데 출연자들이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것도 이 영상의 특징이다. 자연이나 동물을 피사체로 하는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사람이 출연하는 다큐멘터리는 출연자와의 관계가 크게 중요하다. 물론 같은 지역으로 귀농귀촌을 온 사람들이라는 데서 오는 동질감이 다큐멘터리 촬영을 보다 쉽게 만들어줄 수는 있다. 그러나 마음속의 이야기를 툭 털어놓는 데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기에 다큐멘터리의 담담함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만든 사람들의 옷과 풍경에서 보이는 시간의 변화도 이 다큐멘터리의 정감을 한층 더하는 요소다. 각자의 삶의 결이 시간 변화에 따라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일상을 영위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도시와는 어떻게 다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귀농귀촌,
공간과 나의 연결성을 만들어가는 것

장수군으로 귀농귀촌을 한 사람들은 적지 않다. 당장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사람들만 해도 73명이고, 이 사람들이 장수군으로 이사를 한 시기도 제각기 다르다. 6년을 산 사람도 있지만 12~13년을 살며 이곳을 끝까지 살아갈 곳이라 정한 사람들도 있다. 반면 5년이 채 안되어 아직 적응 중인 사람들도 있다. 당장 이 영화를 찍은 이은신 감독도 2017년에 귀농해 영화를 찍을 때 2년차 새내기 귀농인이었다. 이렇게 연고 없는 곳으로 내려와 어려움을 겪은 귀농귀촌인이 한 번쯤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여기 왜 왔지? 나는 여기 연고도 없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가게 되는 이유는 그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 마을 앞에 흐르는 시냇가의 물안개보다 어스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상을 살아나가는 힘이 되어주는 말이기도 하다.
“열심히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는 건데, 열심히 하다 보면 또 인정해 주겠지.”
그 과정을 지나 자신만의 행복을 찾은 사람들은 또 다른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지금 현재 나는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고 있기 때문에 뭐 한달 남아 있다 해도 상관없어요.”
영화 장수애인
영화 장수애인

내가 있을 곳을
더 재밌게 만들어가는 과정

영화 장수애인
장수군의 문화마을 조성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장수군의 귀농귀촌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장수누리파크공원에 2020년 1월에 보금자리를 튼 장수송갤러리에 대한 이야기다. 다큐멘터리의 메가폰을 잡았던 이은신 감독이 대표를 맡았고 군민 3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해 요일별 이색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을 세웠다.
“2017년부터 장수군에 정착하면서 지역문화 증진에 대해 고민해왔는데, 뜻밖의 기회에 단체를 설립하게 되었어요.”
나라에서 지원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귀농귀촌을 하게 된 사람들의 에너지에 힘입어 민간주도로 전환된 셈이다. 다큐멘터리 안에서도 끼를 보였던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끌어가는 역할을 맡았다. 보통 사람들이 오손도손 힘을 모아 소소하게 만들어가는 순하게 재미있는 마을 이야기의 즐거움, 그 기운이 영화 속에도 은은히 배어있다.
<장수애인>,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장수군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가득 차 있으며 농촌만의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우리가 그 아름다움의 한 부분의 채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