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구워도 맛있는 돼지고기,
난축맛돈

글 ㅣ 김주희자료 ㅣ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
한국인들의 삼겹살 사랑은 유명하다.
불판에 지글지글하게 구워 먹는 고소한 맛에 다른 나라에서는 비인기 부위인 삼겹살을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저지방 부위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근내지방이 많아 구워 먹기 좋은 부위는 외식이나 가정 소비가 많지만, 저지방 부위는 판매가 어려워 균형소비에 한계가 있었다.
구이용 부위는 돼지 1마리당 35%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에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에서는 이런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전체 부위 구이용 품종인 ‘난축맛돈’을 개발했다.
제주도의 재래종 흑돼지 기반으로 품종을 개량해 저지방 부위를 구워도 한층 맛이 살아있다.

우리 식문화에 맞는 종돈 개발,
양돈산업에 필수

전 세계적으로 상업적 이용을 위해 키워지는 돼지의 수는 약 30여 종, 그중 우리나라에서 자주 쓰이는 종은 랜드레이스, 요크셔, 듀록, 버크셔 등 4가지다. 아쉬운 점은 외국에서 개량되어 들어온 이러한 종돈들이 우리와는 식습관이 달라 고기 맛도 우리가 추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외국에서 개량된 돼지들은 햄과 같은 가공식품을 만드는 데 적합한 품종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의 재래종 흑돼지가 근내지방 함량이 높아 구웠을 때 감칠맛과 씹는 맛이 특출하여 인기가 높은 것에서 볼 수 있듯 외국 품종은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맛과는 다르다.
흑돼지
그러나 제주도의 재래종 흑돼지를 종돈으로 삼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었다. 육질은 우수하지만 성장이 느리고 체중도 외국산 종돈과 대비해 70% 선에 불과하다. 여기에 한번 새끼가 태어나면 7마리 선이었기 때문에 10마리를 넘게 낳는 다른 종에 비해 번식력도 낮은 편이다. 따라서 재래종 흑돼지의 장점을 지니면서도 단점으로 꼽히던 부분들을 개선하여 종돈으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종자를 개발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됐다.
균형 소비를 추구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삼겹살과 목심과 같은 구이용 부위의 소비량은 미국, 오스트리아, 벨기에, 캐나다 등 15개국의 소비량을 합친 것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그러나 그 외의 부위는 소비가 한정적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등심이나 앞다리, 뒷다리 살은 돈까스나 족발 등으로 쓰이는 정도였다. 돼지 한 마리에서 약 65%의 양을 차지하는 저지방 부위의 소비가 제한적인 만큼 국내산 돼지의 생산도 여기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부위를 구이용으로 소비할 수 있는 돼지 품종을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물이 2014년 특허와 상표 등록을 마친 흑돼지 ‘난축맛돈’이다.

돼지고기의 맛,
유전자로 잡는다

‘난지축산연구소에서 만든 맛있는 돼지’라는 뜻의 ‘난축맛돈’은 제주도의 재래종 돼지와 생산성이 높은 랜드레이스종과의 교배를 통해서 개발해냈다. 2006년 재래종 돼지와 랜드레이스 품종 간 교배를 통해 세계 최대 규모인 1,400여 마리의 참조군을 조성한 것이 시작이다. 난지축산연구소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는 참조군을 대상으로 육질에 미치는 유전자와 몸 전체를 검은색으로 만드는 유전자를 분석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을 거쳤다. 유전자 수준에서 품종개발을 한 사례가 전무한 상황에서 이와 관련한 기술도 30여 건 이상 특허 등록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육질형질은 12번 염색체상의 MYH13과 MYH4 유전자 사이에, 검은색 털은 8번 염색체상의 KIT유전자가 원인유전자라는 것을 밝혀냈다. DNA 수준에서 유전자를 고정하는 방법을 개발하며 ‘난축맛돈’의 기틀을 잡았다.
돼지고기
이렇게 개량된 돼지는 2013년부터 흑돼지 생산자회 및 흑돼지 전용 사육농장에 분양하기 시작했다. ‘난축맛돈’은 기존 재래종의 특징인 우수한 육질과 검은 털빛을 지니면서도 랜드레이스의 장점을 함께 가졌다. 성장 속도는 랜드레이스의 90% 수준이고, 체중도 80% 수준까지 도달했다. 지금은 난축맛돈의 성장 균일도 개선을 위해 폐쇄육종을 실시하며 개량 중으로, 향후 4년 내 업그레이드를 바라보고 있다.
또한 ‘난축맛돈’은 일반 돼지에 비해 근내지방량이 우수하다. 일반 돼지에서 가장 근내지방이 없는 부위 중 하나인 등심은 2~2.5%의 근내지방을 갖고 있지만, ‘난축맛돈’은 평균 10.5%에 달한다. 일반 돼지에 비해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그런 만큼 구워 먹는 데도 적합하고 소비자의 기호도도 높은 편이다.

‘난축맛돈’ 생산과 유통,
어디까지 왔을까?

현재 ‘난축맛돈’의 사육 농장은 1개 농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난축맛돈’을 전용으로 사육하는 제주 한림의 삼호농장은 2019년 기준 2,000두를 사육하며 월 280두를 출하하고 있다. 2021년에는 삼호농장을 비롯해 주변 농장도 품종을 전환하면 ‘난축맛돈’이 10,000두까지도 사육 가능할 거라는 전망이다.
돼지고기
현재 삼호농장에서 사육된 ‘난축맛돈’은 유통 전문업체인 (주)제주드림포크를 통해 철저히 관리되어 유통되고 있다. 또한 ‘난축맛돈’을 메뉴로 사용하는 식당들도 생겼다. 서울에 있는 ‘더 훈 레스토랑’과 ‘크라운돼지’, 제주시에 있는 ‘숙성도’ 등의 식당이 ‘난축맛돈’으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그중 ‘더 훈 레스토랑’은 식재료로 사용하던 스페인 산 이베리코 돼지에서 2019년 6월부터 ‘난축맛돈’으로 변경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 식당에서는 ‘난축맛돈’의 뼈등심을 이용한 돈마호크를 선보이고 있다. 돈마호크는 미국의 토마호크 스테이크와 그 모양과 부위가 똑같아서 붙인 이름으로 소비자들에게 새롭게 다가가고 있다.
‘크라운돼지’도 ‘더 훈 레스토랑’의 오너셰프인 송훈 셰프가 운영하는 ‘난축맛돈’ 전문점이다. 여기서는 한층 다양한 ‘난축맛돈’ 메뉴를 만나볼 수 있다. 오겹살과 목살, 쫄데기살과 돈마호크 메뉴 등을 선보이는데 우리가 흔히 찾는 돼지고기 구이집과 같은 대중적인 식당이다. 1차 초벌한 고기에 훈연향을 입히는 식으로 ‘난축맛돈’의 감칠맛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특히 비선호부위인 앞다리살을 쫄데기살이라는 메뉴로 명명해 앞다리살의 또 다른 맛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 ‘난축맛돈’이 태어난 제주도에서는 ‘숙성도’라는 식당에서 ‘난축맛돈’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뼈등심과 앞다리살은 전량 ‘난축맛돈’만 취급하는데, 최대 40일까지 숙성시키며 고기의 감칠맛을 최대한 올리고 있다.
이렇게 앞다리나 뼈등심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구이 메뉴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소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비선호 부위였던 뼈등심은 높은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독특한 정형 방식과 삼겹살과는 또 다른 감칠맛으로 점차 사람들의 ‘난축맛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난축맛돈,
앞으로의 과제는?

스페인의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수입되면서 한동안 제주 흑돼지보다 이베리코 돼지고기의 검색순위가 상위에 위치해 있었다.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고 싶은 욕구와 새로운 돼지고기라는 소비자들의 흥미가 쏠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2019년부터는 ‘난축맛돈’이 돼지고기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난축맛돈’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에 대한 블로그 후기가 늘어나고 있는 점과 ‘난축맛돈’ 농가와 유통회사를 방문한 유튜버의 영상이 8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것을 보면 그 인기가 얼마나 강세인지를 알 수 있다. 때문에 현재 삼호농장에서만 사육하는 ‘난축맛돈’의 공급이 소비자들의 수요를 따라오지 못해 적극적인 홍보가 부담스럽다는 웃픈 농담도 나온다.
이러한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사육농장의 확대와 사육 기술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현재 ‘난축맛돈’에 관심이 높은 돼지 농장들의 ‘난축맛돈’ 사육이 예정된 만큼 이에 대한 사육기술 지원 및 사후관리를 통해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난축맛돈’을 소비자가 다양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여러 정보를 제공하는 일도 중요하다. 식당에서 ‘난축맛돈’을 맛본 뒤 가정에서까지 소비가 이어져야 균형소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뼈등심의 경우, 캠핑장에서 구워 먹으며 일명 ‘만화고기’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친밀도가 올라갔다. 손질을 할 필요 없이 바로 요리 가능한 손질육으로 판매하면서 거둔 성과다. 소비자를 향한 첫 발을 잘 뗀 만큼, 앞으로 철저한 브랜드 관리와 소비 확대로 ‘난축맛돈’의 균형소비를 촉진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