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적응한 농업,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기까지
울릉 화산섬 밭 농업 시스템

글 ㅣ 김희정
어느 지역이건 사람의 손이 오래도록 닿지 않았던 곳을 농토로 탈바꿈하는 데에는 부단한 노력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특히 울릉도처럼 급경사지 지형을 이루는 곳에서는 한층 품이 많이 든다.
다른 지역에서는 산이라고 생각할 만한 경사도에서도 악착같이 밭을 일구는 만큼 노동력도 많이 든다.
경사도 20°에서 63°에 이르는 급경사지에 이르기까지 일궈낸 울릉 화산섬 밭 농업은 2017년 제9호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독특한 시스템이 특유의 문화와 잘 어우러진 것도 보존 가치를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

쇄환 정책으로 인한 공도,
다시 삶의 터전이 되기까지

울릉도 밭
울릉도에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를 보통 청동기 시대로 추정한다. 울릉도에서 발견된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서 울릉도의 농업에 대해 언급되는 것은 고려 시대까지 올라가야 한다. 현종 9년(1018년) 우산국에 이원구를 통해 농기구를 내려주었다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이 그 예다. 조선시대 때 쓰인 ‘태종실록’에는 울릉도에 대해 ‘우마와 논이 없지만 콩 한 말을 심으면 2~30석, 보리 1석을 심으면 50여 석이 나며 대나무가 큰 서까래 같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그만큼 울릉도의 토양이 비옥하고 밭농사 위주의 경작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울릉도의 비옥한 양토는 한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으로 변했다. 당시 기승을 부렸던 왜구의 침탈로부터 섬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쇄환 정책이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1883년 고종의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기 전까지는 쇄환정책을 거부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울릉도의 거주자였다. 이후 54명의 주민이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농지개척이 이루어졌다. 초기 거주지는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를 중심으로 거주했다. 당시에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넓은 구릉지에 옥수수, 감자, 조 등의 식량 작물 위주 재배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류와 설치류가 작물에 입히는 피해며 가뭄 피해가 극심해 자연 채취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울릉도의 밭 농업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다. 정기 여객선이 다니며 외부와의 교류가 수월해지기 전까지는 약초와 마늘 등 환금 작물 위주의 농업이 이루어졌다.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산채 위주로 작목이 전환된 것은 환금작물의 연작으로 인한 생산량 축소와 얇은 표토로 인한 토양 유실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도입된 것이다. 본래 자생하는 산채들인 만큼 급경사인 밭에서도 잘 자랄 수 있었다. 산채들의 대다수가 다년생 작물인 만큼 표토를 붙들어주는 피복 역할을 하면서 토양 유실을 최소화한 것도 산채의 작물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는 농업소득의 85%를 차지하는 작물이 산채일 정도로 그 비중이 높아졌다.

자연의 순환으로 이어지는
울릉도 밭 농업

울릉도 밭 농업의 특징으로 개간지가 집약적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라 산림과 공존하는 조각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급경사지에 있는 밭의 흙이 떠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고 산림에서 생산된 유기물이 공급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여기에 밭의 둘레에 두둑을 만들고 억새를 심거나 산림을 남겨놓는 등의 띠녹지를 형성한 것도 토양 유실을 방지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이 급경사를 이루는 지형이 물을 공급하는 데에는 나름의 작용을 했다. 지형이 가팔라 하천이 발달할 수는 없었고, 대신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바다가 만나 해무가 되면서 농지에 그늘을 형성하고 수분을 공급하게 된 것이다. 겨울에는 습기를 머금은 구름이 울릉도에 당도해 눈을 내리면서 추운 겨울에도 작물들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울릉도 밭
울릉도 개척령을 통해 들어온 이주민들이 농지를 가꿀 때에는 화전을 통해 경작지를 개간했지만 계속 화전을 통해 땅의 비옥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이때 퇴비의 재료로 쓰인 것은 각 농가마다 관리하는 축사에서 나온 분뇨였다. 그중에서도 울릉도의 특산물인 약소와 울릉도 밭 농업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다. 소의 배설물을 잘 삭혀 밭의 거름으로 쓰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기피 물질로 분류되는 소의 배설물도 이 곳에서는 자연과 함께 순환하는 농업 자원이 된 것이다. 또한 사람이 먹기에는 억세고 크게 자란 산채들을 잘 말려서 소에게 여물로 주는 것도 생태계의 순환으로 자리 잡았다. 울릉도에서 자란 한우를 특별히 ‘약소’라고 일컫는 것도 이 산채를 먹잇감으로 삼는 데에서 나왔다. 산마늘과 섬말나리 같은 다양한 산채들을 먹고 자라서 한층 몸에 좋은 약성을 지닌 것을 인정받아 특산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울릉도의 독특한 자생식물들이 살아남는 데에도 현재의 밭 농업 시스템과 자연이 이룬 공존상태가 한 몫 했다. 자생 산채들이었던 여러 산채들이 작물화를 통해 수많은 특산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또한 화산섬 밭농업의 특유한 형태인 조각 형태의 밭은 600여 종의 식물들이 다양성을 유지한 생태계에서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대규모 경작지에서는 대량 생산에 알맞은 기계화가 쉬운 작물 위주로 심기 쉽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데다 경사가 심한 조각 밭에서는 인력을 기반으로 한 농업이 이루어지는 만큼 다양한 식물들이 자생할 수 있었다. 울릉도의 자생 식물인 섬잣나무, 솔송나무, 너도밤나무 등을 비롯해 향나무, 울릉국화, 섬백리향 군락지 등이 다양한 지역에 형성되어있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

사람과 자연이 만난 독특한
울릉의 문화와 경관

울릉도의 밭 농업은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되는 환경을 개척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특히 울릉도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이주를 하면서 뭍의 문화가 함께 반영되어 있는 것이 독특한 점이다. 그중 하나로 해신보다는 동네를 수호하는 동신, 산을 지키는 산신을 중요시하는 문화를 들 수 있다. 마을의 해신당이라고 알려진 경우에도 실제 현판은 산신당으로 적혀있다거나 산신당, 동신당 등에서 해신이 모셔진 경우,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중앙이나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해신상이 모셔져 있는 것도 이를 반영한 결과다.
이와 함께 나리분지에 위치한 너와집, 투막집도 울릉도의 밭 농업과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초기 개척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문화경관으로도 손꼽히고 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도 유일한 평지인 만큼 울릉도의 개척민들도 이곳을 중심으로 농업 활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분지인 만큼 한겨울에는 눈이 3m 넘게 쌓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혹독한 기후가 집을 상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각각 나무와 억새로 만든 우데기를 두른 것이 특징이다. 이 우데기는 지붕의 처마에 고정시켜 외벽과 처마 사이에 벽으로 막힌 가외공간을 만들어줘 겨울철 불을 떼고 요리를 하는 과정을 한층 수월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항상 혹독한 기후에 투쟁했던 개척민들의 생활상과 농업 양상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방식이 품앗이가 아니라 인건비를 지급하는 임노동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도 울릉도 밭 농업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다. 예나 지금이나 노동력이 부족한 만큼 계절마다 사람을 사서 노동력을 확보하거나 따로 거주할 곳과 양식, 한 달에 얼마간의 돈을 지급하는 식으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경우도 보고되었다. 지금은 상주하는 사람이 더 줄어들면서 노동력 동원이 더 어려워졌는데, 이를 기계력으로 대체한 것이 모노레일을 통한 노동력 절감이다. 2004년 들어선 농업용 모노레일은 지형에 따라 설치가 가능해 자연환경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작업 능률을 2배 이상 높여주는 울릉의 독특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군에서도 각종 점검과 안전교육을 수행하면서 친환경적인 영농에 한층 박차를 가했다.
울릉도 밭

전통 밭 농업,
오래된 미래와 맞닿다

울릉도의 화산섬 밭 농업 시스템과 연계된 것으로 먹거리 산업을 들 수 있다. 전통적인 음식자원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 받으면서 슬로푸드로서 주목받은 것이다. 특히 2013년과 2014년, 2020년에는 슬로푸드 국제협회가 ‘맛의 방주’와 ‘프레지디아’에 울릉도의 음식 자원을 등록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프레시디아’는 멸종 위기에 처한 질 좋은 음식 자원을 보존하고 전통적 생산 방법을 보호한다는 가치를 내걸고 있다. 섬말나리, 참고비, 삼나물, 두메부추 등을 생산하는 명인들을 직접 돕기 위해 모임과 시장을 연결해주고 슬로푸드 행사에서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이와 함께 2020년 농촌 신활력 플러스 사업에 선정된 ‘울릉 화산섬 비즈니스플랫폼 구축사업’도 울릉도를 청정 산채의 고장으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영향을 미칠 예정이다. 이 구축사업은 ‘친환경 산채의 섬 프로젝트’와 ‘함께하는 주민 활성화 프로젝트’로 나뉠 수 있다. ‘친환경 산채의 섬 프로젝트’는 산채 스테이션 거점센터 설립을 통해 가공식품을 개발하고 기술 R&D 창출을 도모하는 프로젝트다. 기존에는 명이나물 장아찌, 산채 건나물 위주로 농업 생산물을 유통했다면, 해당 스테이션을 통해서 한층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한 농업 생산물이 유통될 예정이다. ‘함께하는 주민 활성화 프로젝트’는 밭농업 아카데미, 농가레스토랑 창업 지원, 스마트 유통망 구축, 화산섬 페스티벌 개최 등의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군이 추진하는 슬로푸드 운동을 다각도로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울릉도 화산섬 밭농업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끝없는 인내심을 통해 정착시킨 밭 농업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새로운 관광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군 차원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