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훼산업의
위기와 해결책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
권오근 연구관

글 ㅣ 김동연사진 ㅣ 황성규
‘성장’의 이면에는 언제나 ‘정체’가 존재한다.
고도성장을 이룰 때 많은 이들은 그 성장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 정체기는 찾아온다.
정체기는 사회,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문제점에서 찾아오는 현상으로 이를 극복한다면
변화와 함께 새로운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우리 화훼산업도 수많은 성과를 만들어 내며 지속 성장을 이루어 왔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 국제정세, 국내소비문화의 변화 등 다양한 현상들로 인해
우리 화훼산업은 정체와 하락을 반복하고 있다. 과연 문제 해결을 위한 변화의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정책, 기술, 새로운 트렌드 형성을 통해 국민들에게 진정한 화훼문화를 만들어 주는 것이
변화의 중요 과제라고 말하는 권오근 연구관.
그에게서 우리 화훼산업의 문제점과 새로운 부흥을 이끌 타개책에 대해 들어봤다.

꼭대기에 올랐다가 내려오다,
우리 화훼의 어제와 오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 권오근 연구관
2005년은 우리 화훼의 전성기였다. 생산액 1조 원을 돌파했고, 가파른 성장세는 화훼의 밝은 내일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정점에 오른 그 순간부터 우리 화훼는 거짓말처럼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잘나가던 화훼산업이 갑자기 왜, 쇠락한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 권오근 연구관에게 물었다. 권오근 연구관은 개화생리학자로서 신품종 개발과 신화훼 연구 등 화훼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해온 전문가이다.
그는 화훼문화의 발전을 보기 위해서는 유럽의 화훼산업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은 일찍부터 화훼문화가 발달하면서 화훼산업이 함께 성장했어요.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유럽에는 대형 식물원과 정원을 만드는 게 유행처럼 퍼졌죠. 이 시기 유럽 사람들에게 꽃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즐기는 생활의 일부였어요.” 유럽에서 꽃은 사교생활을 영위하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했다. 품종 개발도 개인들이 취미 생활의 일환으로 이루어졌고, 주거 형태도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이어서 꽃으로 집을 장식하고 선물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왔다. 가드닝은 아직도 변함없이 유럽인들이 즐기는 취미활동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배고픔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1970년대 통일벼가 개발되었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녹색혁명이자 식량 주도 농업정책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말 그대로 우리는 살 만해졌다. “국민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문화도 급속도로 변했어요. 이때 우리 화훼도 많은 발전이 있었죠.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어요. IMF나 미국발 금융위기 등 화훼문화가 확산하려고 하면 언제나 성장을 막는 암초를 만났죠. 이때 생긴 소비 둔화는 화훼를 사치재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화훼를 멀리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죠. 이와 함께 우리의 주거문화도 화훼산업 발전에 저해요소 중 하나입니다. 화훼문화가 발달하려면 정원을 가꾸고 하는 단독주택 주거문화가 발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파트 문화가 주거문화로 자리를 잡았어요. 아파트에서 화훼를 즐기기에는 공간의 제약이 많아요. 그나마 베란다가 화훼를 즐기기 좋은데 이마저도 실내 공간을 넓히는 베란다 확장 때문에 화분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 거죠.”
주요 수출국인 일본과 중국의 정세 또한 국내 화훼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우리 화훼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수출국으로 화훼산업 성장에 크게 이바지한 국가이다. 그러나 동일본 대지진과 일본의 경기둔화로 일본 수출이 크게 감소했고, 콜롬비아, 케냐 등 화훼 신흥국의 저가 세로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예전과 같은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중국은 시진핑 집권 이후 부패 척결 기조 아래 관료들 사이에 고급 화훼를 선물로 주고받던 관행이 금지되면서, 선물용 고급 화훼인 심비디움을 공급하던 수출 길도 막히게 되었다.
국내 내수 시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청탁금지법이나 조화 산업의 발전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화훼시장에 최근 발생한 코로나19는 화훼산업에 더 큰 고민을 안겼다. “졸업식 때나 행사, 승진, 개업 선물로 화환이나 화분을 사서 선물하는 문화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러한 꽃을 선물하는 문화는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죠. 특히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발효되면서 꽃 소비문화는 큰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난 화분이 웬만한 관공서, 기업체 정문을 통과하지 못해요. 관공서나 업체 등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우려해서 꽃 선물을 받는 것을 직원들 보호 차원에서 원천 차단해 버린 거죠. 올해 같은 경우는 코로나19 때문에 졸업식 자체를 아예 안 하니까 졸업 시즌에는 팔천 원 가까이 하던 장미 한 단 값이 지금 3천 원 정도 합니다. 이처럼 화훼산업은 예측 불가능한 외적인 환경에 아주 민감한 산업입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 권오근 연구관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 권오근 연구관

향유하는 화훼문화 형성을
위한 노력들

5년 전부터 준비한 화훼 관련 법률이 결실을 맺었다. 화훼산업 발전 및 화훼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화훼산업법)이 2019년 8월에 제정되었고 올해 8월에 시행된다. 화훼산업법은 화훼산업 발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화훼문화를 진흥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화훼산업법은 특히 생화를 재사용한 ‘재사용 화환’ 표시를 의무화했다. 한 번 이상 사용한 화환을 새것처럼 여러 번 되풀이 판매하여 얻는 부당 이익을 근절시키기 위한 방법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에서는 개개인의 선호도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꽃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화종의 다각화로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꽃을 선택하고 소비하는 요즘 소비자의 트렌드에 발맞춘 방향 설정이다. 예전처럼 장미, 국화, 백합같이 절화 중심의 연구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는 새로운 화종들을 보급하기 위한 연구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화종은 크레마티스, 헬레보러스, 부발디아, 왁스플라워, 유칼립투스, 아카시아, 안개나무, 아네모네 등이 있다.
일본 수출에 의존하고 있던 화훼 무역의 한계를 탈피해 수출 판로를 확장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미국과의 검역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원활한 미국 수출의 길도 열리고 있다. “호접란은 전 세계적으로 소비가 많이 되는 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분화 소비로는 1등입니다. 대만이 호접란 시장에서 전 세계에 70%를 생산, 판매하고 수출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기간산업이죠. 대만은 일반 병해충이 달려들지 못하게 콘크리트를 치고 깨끗한 환경에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미국과 검역협정까지 맺어서 뿌리가 배지에 담긴 채로 바로 수출이 가능했어요. 수출할 수 있는 허가권을 얻었던 거죠. 우리나라에서도 수출은 하고 있었는데 그게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어린 묘들을 골라 흙이 안 묻도록 물로 깨끗하게 씻어야만 수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에서야 미국과 검역협정이 이루어져 시설 기준만 통과되면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꽃
꽃
소비 트렌드를 만들기 위한 정책적인 고민도 준비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중 많은 사람이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빽빽한 도심과 아파트를 벗어나 넓은 땅에 집을 짓고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이들의 욕구를 정원 붐으로 연결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이다. 개인의 주거와 화훼소비를 결합하는 방법과 함께 공공시설에도 이런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각 지자체는 꽃 축제를 열거나 도로 주변 화단, 공원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데 여기에 필요한 화훼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절화, 분화가 많이 소비되었다면 앞으로는 정원, 공원, 국토조경에 필요한 초화류, 목본류, 화목류들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이 심화되고 국민 생활이 각박해지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높은 자살률은 국민의 정신 건강이 나빠진다는 징후다. 화훼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꽃의 소비를 촉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정서를 함양하고 정신 건강을 보살피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시간을 들여 꽃 한 송이를 바라볼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2015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는 화훼과를 개편하여 도시농업과를 신설했어요. 도시농업과에서는 주로 도시에서 생활하시는 시민들에게 화훼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학생층, 일반인, 노년층에서 장애인들, 수형자들에게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비 계층에 따라 식물을 통해서 마음을 치유하는 치유 농업의 영역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겨울에도 뿌리가 살아있는
야생화처럼

권오근 연구관은 현재 숙근 화훼 연구실 실장을 맡고 있다. 숙근 화훼는 뿌리가 살아서 겨울에 잠을 자고 있다가 그 이듬해에 다시 새싹이 올라와서 자라는 꽃을 말한다. 겨울에 풀잎이 다 죽은 것처럼 보여도 뿌리는 살아서 잠자고 있다. 결국 봄에는 싹을 틔우고 다시 생을 시작한다.
“화훼산업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와 혁신을 하면 살아날 수 있어요. 새로운 화훼문화 진흥에 관한 법도 만들어지고 국민들이 좋아하는 부분을 잘 알아내서 연구나 농업의 방향을 전환한다면 화훼산업은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거죠.”
꿈틀거리는 뿌리로 봄을 기다리는 야생화처럼 한국 화훼산업도 변화와 혁신의 봄을 맞이하여 다시 일어서기를 권오근 연구관은 바라고 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 권오근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