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인삼이되,
키워주기는 자연이라
금산전통인삼농업

글 ㅣ 김희정자료 ㅣ 농촌진흥청
인삼이라고 다 같은 인삼이 아니다.
중국 운남부터 네팔 고지대, 베트남 중부부터 미국까지 생육 조건을 맞춘다면
키울 수 있는 것이 인삼이지만 그 품질의 차이는 확연하다.
고려인삼이라는 단어가 고유명사로 정착된 것도 특유의 약효로
다른 지역의 삼과 확연히 다른 효과가 난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금산인삼은 ‘신농본초경’, ‘본초강목’ 등에서 중히 여겼던 백제삼의 명맥을 잇는 유서 깊은 특산물이다.
금산전통인삼농업이 인삼 품목으로는 세계 최초로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데에도
꾸준히 이어져온 전통성이 큰 몫을 차지했다.
전통적 지식체계 전승을 통해 이어져온 인삼농업은 금산군 자체를 고려인삼의 중심지로 각인시켰다.

전통 지식 전승으로
친환경 농업 지속

인삼 일러스트
시장에 나오는 식용 인삼은 대부분 4년에서 6년 동안 땅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1년근이나 2년근 인삼이 시장에 나오는 것도 볼 수 있지만 식용으로 내놓기보다는 묘삼이라 하여 모종용으로 나오는 것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인삼농사는 땅을 돌려짓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농사에 비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대표적인 농업이다. 그런 점에서 500년 이상 인삼농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금산전통인삼농업은 독특한 데가 있다.
금산군의 환경이 인삼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것도 있지만 공동체 특유의 지식 전승에 덕을 본 바가 크다. 인삼농사는 한번 짓고 나면 약 10년간은 땅을 놀려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력 소모가 크다. 이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어져 온 것이 ‘순환식 이동농법’이다. 땅을 옮겨가며 메뚜기처럼 농사를 짓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작물을 윤작한 다음 1년간 땅에 녹비작물을 심어 친환경 비료를 만든 뒤 이를 골고루 갈아엎어 땅의 지력을 다시 회복하도록 하는 것까지가 ‘순환식 이동농법’이다.
인삼재배에 최소 4년을 들인다 해도 휴경과 윤작, 땅 관리까지 합쳐 10년이 넘게 걸리니 단순히 인간의 힘으로만 이뤄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밭에서만 인삼을 재배한다는 통념을 깨고 논에서도 인삼을 재배하는 것 역시 금산 인삼농업의 특징 중 하나다. 1970년 인삼농업 종사자들의 증언을 채록한 <새로운 인삼재배법>에서도 논에 삼을 심을 경우 밭삼에 비해 윤작 기간이 짧아진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각자의 체험담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삼재배법을 정리한 것이 농업유산으로 내려온 예다. 인삼을 가공하는 방식도 다른 지역과는 달리 차별화되었다. 인삼 뿌리를 구부려 말린 곡삼으로 유통되었는데, 보관과 이용이 편리한데다 어느 지역에서 나왔는지를 보여주는 징표로도 쓰여 금산인삼이 아니라 금산곡삼이라는 말로 자주 쓰였다.

시원한 그늘막 아래
순환하는 자연

인삼을 재배하는 땅만 순환하는 것이 아니다. 인삼을 키우는 4년에서 6년 사이, 그 일대의 자연도 순환하는 모습을 보인다. 금산의 인삼밭은 보통 북향 혹은 북동향으로 산자락에 조성되어 있다. 이는 산으로 둘러싸인 금산의 환경을 고려했을 때 뜨거운 햇빛은 적게 받고 낮 시간동안 바람 순환을 통해 기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재배지를 선정한 것이다. 해가림 시설도 산의 경사에 맞춰 일정 각도를 유지하는데 바람의 순환을 막지 않으면서도 햇빛을 피하기 위한 장치다. 1778년 영조실록에도 해가림 시설이 개발되었다고 언급되는 만큼 조상의 지혜가 돋보이는 장치이기도 하다. 산 아래 논에서 나온 볏짚은 해가림 시설의 재료로 쓰였고, 주변 산림은 천연 해가림인 동시에 낙엽을 뿌리며 유기질 퇴비 역할을 했다. 이렇게 반음지성 환경을 유지하면서 나타난 것이 선태류와 인삼재배지의 공생 관계다. 다른 재배작물에 비해 재배기간이 긴데다 생육에 적당한 양의 햇빛과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 선태류가 자라나게 되었다. 반대로 선태류가 인삼재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삼이 뿌리를 쉽게 내릴 수 있도록 하는데다 토양과 수분이 유실되지 않도록 인삼밭의 환경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수분과 서늘한 온도가 유지되는 만큼 인삼밭은 다양한 동물의 서식처로도 쓰인다. 특히 금산의 인삼밭 주변에서는 약 17여 종의 보호종 조류를 관찰할 수 있다. 이는 새와 인삼이 밀접한 연관을 맺은 데에서도 유래한다. 산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자연산 산삼이 그 예인데, 잡식성에 가까운 새들이 인삼의 열매를 섭취한 뒤 날아가 다른 산에서 인삼의 씨를 배설하는 것이 산삼이 자라나는 이유 중 하나다.
일정량 이상의 수분이 유지되는 만큼 양서류와 파충류의 서식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2급 멸종위기종인 좁은입두꺼비, 서울개구리, 표범장지뱀, 천연기념물 453호로 지정된 남생이 등이 금산 일대에서 발견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양서류와 파충류는 논과 같은 습지대가 주 서식지인 만큼 농약에 노출되기도 쉬운데 전통적인 방식을 따른 인삼재배 지대는 이들의 서식에 충분할 정도의 습기를 유지하면서도 농약 노출을 줄일 수 있던 것이다.
인삼

금산의 인삼 설화,
공동체로 계승되다

설화에 따르면 금산의 인삼농사는 1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남이면 일대에 살던 강처사라는 사람이 홀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달라며 관음굴에서 100일 동안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드리고 잠이 들었을 때 산신령이 꿈속에서 관음봉 암벽의 붉은 열매 3개 달린 풀을 어머니의 약으로 쓰라는 계시를 내렸다. 이를 캐어 뿌리를 달여 드렸더니 어머니의 병이 완쾌되었고, 붉은 열매 3개 안에 있던 씨앗을 자신이 살던 동네에 심어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금산인삼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산신령이 점지한 약초인 만큼 인삼은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영물에 가깝다고 간주되었다. 이렇게 귀한 인삼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며 인삼 뿌리가 자라는 5월 달에 제례를 올렸는데 이것이 바로 ‘삼장제’다. 금산군 일대에는 지금도 ‘삼장제’를 비롯한 각종 전통놀이와 제례가 이어지고 있다. 요새는 ‘금산인삼축제’의 첫 행사로 이루어지는 ‘개삼제’ 역시 제례의 일종이다. 처음으로 삼을 심기 시작한 장소인 개삼터에서 열리는 ‘개삼제’는 인삼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정착이 되었다. 또한 개삼터 역시 효심을 보답 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약초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심어보자 생각했던 강처사의 마음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곳이다.
한편 금산지역 마을마다 발달한 ‘송계’ 역시 공동체 문화를 잘 보여준다. ‘송계’는 겨울철 땔감부터 벼와 인삼 재배에 쓸 퇴비를 만들기 위해 풀을 베어오는 두레와 같은 기능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내려오는 전통놀이가 ‘송계지게놀이’다. 각 마을별로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들 때 힘든 일을 한층 즐겁게 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어울리던 것이 ‘송계지게놀이’란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한때 농사 인구가 줄어들면서 실전될 뻔 했으나 금산문화센터에서 이를 전통놀이로 보존하면서 명맥이 이어졌고 매년 축제에서 재현되고 있다.
인삼

건강도 재미도
인삼과 함께하다

최고의 인삼 산지이자 각 지역의 인삼을 총괄해 다루는 시장으로서 금산의 지위는 쭉 이어져왔다. 금산군에 위치한 고속도로 휴게소조차 인삼갈비탕, 인삼가마솥비빔밥과 같은 인삼요리를 파는 만큼 그 연관성을 잊어버리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그런 만큼 인삼과 관련된 축제나 향토음식도 충실하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요리로는 인삼튀김이 있다. 수삼에 옷을 입혀 그대로 튀겨낸 뒤 인삼조청에 찍어먹는데, 한번 익힌 만큼 인삼 특유의 쓴맛도 은은할 정도로만 남아 있어 쉽게 먹을 수 있다. 맑은 강이 흐르는 만큼 민물고기를 이용한 요리도 있다. 인삼으로 민물고기의 비린내를 잡은 인삼어죽은 외양은 평범해보여도 예부터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 먹이던 보양식이라는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을 만큼 걸쭉하다.
이러한 향토음식과 함께 다른 지역 사람들의 발길도 끌어당기는 축제가 있으니 매년 가을에 열리는 ‘금산인삼축제’다. 수확철에 맞춰 열리는 축제라 금산에서 자란 인삼을 바로 산지에서 사가려는 사람들에게도 열려있다. 인삼 캐기부터 인삼주 만들기, 인삼 말리기 등 산지에서만 해볼 수 있는 체험이 많아 금산의 지역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체험형 문화관광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금산의 인삼 브랜드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지자체에서 꾸준히 기울이고 있다. 경작 신고, 안전성 검사 등을 지키지 않은 인삼은 유통을 제한하는 등의 노력이 있어 외지인이라도 시장에서 믿고 인삼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다는 인삼의 전통적 가치가 금산에서 한층 빛나는 이유다.
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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