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흐름 속에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다,
우리 치유농업

글 ㅣ 김주희 자료 ㅣ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 도시농업과
농업과 자연은 전통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자연환경과 공존해가며 인류가 생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기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스마트 농업이 대두되고 빅데이터로
각종 병충해 방제 기술을 정립하는 이 시대에도 자연과 농업이 예전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렇다. 바로 사람들이 이뤄온 농업문화와 도시화된 지역에서
경험하기 힘든 자연경관이 합쳐져 치유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유농업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소설가인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발표한 작품인 ‘비밀의 화원’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치유농업의 기본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방에만 틀어박혀 살던 병약한 소년, 소녀가 비밀의 화원을 가꾸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장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비밀의 화원’에서는 다양한 요소가 주인공의 성장과 힐링을 돕는다. 바깥에서 줄넘기를 하고 뛰어 노는 것을 비롯해 싱싱한 식재료로 만든 농가의 음식들, 흙을 만지고 덩굴과 잡초를 제거하며 가꾸는 식물들, 동물과 사람들 사이의 교감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치유농업은 농촌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자원과 자연을 기반으로 삼아 이용자에게 심리적 안정과 휴양,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일체의 농업적 활동을 일컫는다. 온천이나 휴양림 등의 특이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지 않아도 그 외 자원들을 통해 치유농업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러한 치유농업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그 시기를 정확히 따지기는 어렵다. 각국의 문화나 사회 구조에 따라서도 그 태동기를 각각 다르게 잡을 수 있다. 치유농업의 개념이 등장하고 출현한 것은 보통 1960~70년대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와 같이 전문화된 치유농장이 정착·확대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치유농업
유럽 전역에서 치유농업을 시행하는 농장들의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는 국가가 있다면 단연 네덜란드다. 1999년 국가지원센터를 통해 본격적으로 치유농업이 성장했으며 지금은 치유농업 경영자를 위한 국가적 연합이 형성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치유농업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생태·경제학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에 대해 꾸준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이 컸다. 또한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와 치매 노인들의 돌봄 형태에 대해 논의하면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돌봄 활동으로 농업이 주목받은 것도 치유농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치유농업에 대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 2013년 부터다. 기존에도 농촌의 자원을 활용해 치유 활동에 사용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1980년대 원예치유, 1990년대 산림치유와 동물 매개 치유가 발전해온 것이 그 예다. 그러나 농촌의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활용해 치유적 기능으로 활용한다는 개념으로 치유농업이라는 단어를 정립하는 수준에 달하지는 못했다. 2013년 농촌진흥청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협의를 거쳐 치유농업이라는 용어를 정의하였다.

한국에서의 치유농업,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치유농업의 본격적인 산업화를 위해서는 치유농업의 실천 사례와 효과를 분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치유농업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현장에서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가 201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되었다. 특기할만한 점은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어떤 식으로 고안하는가에 따라 신체·정서적으로 효과를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일례로 2014년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실버주말농장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텃밭 가꾸기와 공동체 밥상 차리기 프로그램을 주 1회, 2시간씩 27주간 진행했다. 이후 노인들의 우울감 감소율은 60%에 달했으며 총 콜레스테롤은 5%, 체지방율은 2%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텃밭을 조성하고 가꾸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연구도 초기에 제시되었다. 2014년 김천소년교도소에서 진행된 상자텃밭 가꾸기 프로그램은 주 1회 2시간씩 24주간 진행되었다. 상자텃밭을 가꾼 청소년 재소자들의 경우 신체·정신·감정적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가해질 때 분비되는 타액코르티솔 함량이 52%로 줄어드는 효과를 보였다. 이와 함께 설문지를 통해 나타난 결과로는 불안감이 45% 줄어들었고, 우울감도 5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유농업
이와 함께 직접 농사에 참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농촌의 자원을 향유하고 즐기는 것으로도 심신 치유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되었다. 홍천 열목어마을에서 2018년 진행했던 농촌치유자원 상품화 연구가 대표적이다. 소방관을 대상으로 1박 2일간 명상과 약선 치유음식, 트레킹 등을 실시한 결과 스트레스 지수가 100에서 89로 떨어지고, 자율신경활성도는 93에서 102로 올라간 것이다. 특히 자율신경활성도는 수면, 감정 조절, 소화 등 인체의 중요한 생리활동을 좌우하며 높을수록 건강하다는 뜻이다. 매우 나쁨에서 매우 좋음까지 5단계로 나뉘는데, 그중 정상범위 수치는 90에서 110사이다. 나쁨 단계에서 간신히 벗어났던 수치를 보다 높은 수치로 끌어올렸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이처럼 농촌의 자연·문화적 자원을 향유하는 방식, 텃밭을 조성하며 농작업을 하는 활동 모두 치유농업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결과를 보였다. 이에 농촌진흥청에서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을 중심으로 치유농업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한 법제화 방안과 함께 생애주기 맞춤형 치유농업 서비스 설계 연구 등을 진행했다. 그에 따라 현재는 치유농업 종합계획 수립 및 산업 지원을 위한 전문인력 양성 등의 제도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농촌진흥청, 치유농업이 전문적이고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데 큰 역할 맡아

치유농업
2020년 3월 6일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1년 3월 25일부터 시행된 이 법률은 치유농업을 활성화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농업, 농촌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치유농업의 전문적 업무를 수행하는 치유농업사 자격증 제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2급 치유농업사는 치유농업사 양성기관에서 운영하는 2급 치유농업사 양성과정을 이수한 이후 국가자격시험에 합격해야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교과 과정은 동·식물, 보건의료, 심리상담 등의 선택과목 3개에 치유농업의 대상 이해, 활동 소재 및 환경관리, 프로그램 운영 및 관리 등의 과목을 총 142시간 이수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1급 치유농업사는 여기에 5년의 경력을 쌓은 뒤 1급 양성과정 이수 후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취득할 수 있다. 특히 치유농업 참여자 중점관리 등의 교과목을 도입해 참여자의 정서적 안정까지도 끌어낼 수 있는 심화적인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특징이다.
농촌진흥청은 이러한 치유농업 증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5년마다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종합계획’을 세우고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 그 예다. 여기에 치유농업 실태조사, 치유농업 정보망 구축·운영부터 각종 치유농업 관련 기술을 개발·보급하는 것도 농촌진흥청의 임무다. 또한 치유농업사 양성에 대해서는 각 시·도의 지방자치단체장과 농촌진흥청장에게 관리 권한이 있다. 지방농촌진흥기관, 대학 또는 대학 부설기관 등을 치유농업사 양성 교육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법령 시행을 앞두고 농촌진흥청에서는 각종 치유농업 시설과 프로그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중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정 계층이나 직업군에 맞춘 치유농업 프로그램 개발이다. 실버세대 맞춤형 치유농업 프로그램은 보건복지부와 연계해 2021년부터 시행되는 치매관리종합계획에 반영되어 전국 치매안심센터에서 활용될 예정이다. 이미 이동약자도 재배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정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가이드라인도 마련한 상태다.
또한 소방관의 스트레스 경감 프로그램 현장연구를 진행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중 소방서 내에 치유정원을 조성하고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타액코르티솔이 27.1%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체류형 치유농장 체험프로그램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관리와 심신 건강 증진에 효과적인 것이 나타나면서 2020년 10월 소방청과 MOU를 체결해 실용화에 나서기도 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힐링을 꿈꿀 때가 있다. 도시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농촌 지역에서 건강한 땀을 흘리는 것으로 마음속 부담감을 덜어내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치유농업은 제각기 다른 니즈를 충족해줄 수 있는 생활 속 농업으로 뿌리내릴 것이다. 이미 농촌진흥청의 각 소속기관별로 전문가들과 함께 대상별 치유효과 활용 방안을 개발하고 산림청, 해양수산부와 함께 스마트 헬스케어 기술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유관기관과의 협업으로 보다 특성화된 치유농업을 만날 날이 머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