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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필리핀에서 청춘을 보낸 청년이 있다. 익숙한 도시의 삶을 뒤로 하고, 그가 선택한 곳은 경기도 화성의 농촌.
시작은 아버지와 함께 바라본 파파야 나무 한 그루였다. 2020년 문을 연 ‘트로피칼베이’에는 파파야와 바나나, 파인애플, 잭프루트가 사계절 초록빛 풍경을 만든다.
정직하게 키운 묘목과 아낌없이 나누는 재배 노하우로 전국 21곳 농가와 함께 새로운 열대농업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홍성빈 대표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경기도 화성에서 열대과일 체험농장 트로피칼베이를 운영하는 홍성빈입니다. 동생 홍하빈 공동대표와 함께 파파야를 비롯한 다양한 열대과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취미로 농사를 짓던 아버지께서 어느 날 함께 농장을 해보자고 제안하셨어요. 저는 그 제안을 단순한 취미가 아닌 새로운 삶의 기회로 받아들였죠.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귀농을 준비했고, 2019년 토지를 마련했습니다. 그 뒤로도 1년 동안 농장 설계와 작물 재배를 준비해 2020년 6월 트로피칼베이의 문을 열었어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필리핀에서 7년간 생활하며 대학도 다녔어요. 영어와 필리핀어로 소통할 수 있고, 현지에 오랜 지인들도 있죠. 지금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종자를 들여오는 과정에서도 그때의 경험과 당시 맺은 인연이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새롭게 농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작물을 선택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필리핀에서 오래 생활한 만큼 열대작물은 제게 낯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익숙한 일상의 일부이기도 했고요. 농장을 준비하던 시기에 아버지와 함께 필리핀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커다란 파파야 나무를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이걸 한국에서 키워보자”라고 말씀하셨죠. 그 한마디가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망고와 두리안 등 여러 열대과일 농장을 둘러봤어요. 국내 재배 가능성과 시장성을 함께 살펴본 결과, 파파야가 가장 가능성이 큰 작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트로피칼베이가 파파야로 시작한 이유이자, 지금도 파파야에 가장 애착이 가는 이유예요.
트로피칼베이는 전체 약 3,700평 규모로, 그중 시설 면적이 1,900평입니다. 열대과일을 직접 수확할 수 있는 식물원과 묘목을 키우는 스마트팜, 아이들을 위한 체험장과 실내 놀이터가 마련돼 있어요. 농장 한편에는 염소와 양, 토끼, 기니피그 등 100여 마리의 동물도 함께 살아갑니다. 이곳의 동물들은 단순히 관람하거나 체험하는 대상만은 아니에요. 농장에서 나온 바나나 잎 등의 부산물을 먹고, 동물의 배설물은 다시 퇴비로 활용됩니다. 농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순환이 이루어지는 셈이죠. 연간 방문객은 약 6만 명입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단체는 물론 장애인 단체,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분들, 지자체 공무원 등 다양한 분들이 트로피칼베이를 찾고 있어요.
직접 재배한 열대과일을 판매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대상으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열대과일 모종을 키워 농가에 공급하는 육묘업과 직접 채취하거나 해외에서 들여온 씨앗을 판매하는 종자업도 함께합니다. 화성까지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농가에는 택배로 묘목을 보내드리고 있어요. 경기도와 화성시 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는 귀농·귀촌 교육, 청년농업인 교육에도 강사로 참여합니다. 현재 트로피칼베이와 함께 열대작물을 재배하는 체인 농가는 전국 21곳입니다. 건강한 묘목을 공급하는 것뿐 아니라 재배 기술과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까지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있어요.
파파야, 잭프루트, 바나나, 파인애플을 중심으로 사과대추와 앵두도 재배하고 있어요. 파파야는 일 년 내내 열매가 맺혀 사계절 내내 만날 수 있고, 잭프루트는 1년에 두 차례 수확하고요. 세계에서 가장 큰 과일로 알려진 잭프루트를 국내에서 생과로 판매하는 곳은 현재 트로피칼베이가 유일합니다.
파파야와 바나나, 파인애플을 직접 수확하는 체험이 가장 인기가 많아요. 국내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활동이라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무척 흥미로워합니다. 수확 체험 외에도 덜 익은 파파야로 태국식 샐러드 ‘솜땀(Som tam)’을 만들거나 파인애플을 올린 피자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직접 만지고 수확한 과일이 한 접시의 음식으로 완성되는 과정까지 경험할 수 있죠. 주로 어린이들이 참여하지만 어른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내년에는 파파야 아이스크림 만들기 체험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에요.
많은 분이 겨울철 온도 관리를 가장 먼저 걱정하세요. 하지만 적절한 온실 설비와 히트펌프를 갖추면 추위 자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초창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참고할 만한 재배 정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에요. 국내에 선례가 많지 않다 보니 물을 주는 시기부터 온도와 습도, 병해충 관리까지 하나하나 직접 부딪히며 배워야 했어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 경험이 지금은 트로피칼베이만의 가장 큰 자산이 됐습니다. 현재는 각 지역 농업기술원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화성시 농업기술센터에서 6년째 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다른 농업인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해 스마트팜 기술보급 시범사업을 통해 자동 개폐 시설을 비롯한 스마트팜 설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시설 지원도 큰 도움이 됐지만, 현장에서 필요한 생산성 데이터와 기술정보를 빠르게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든든해요. 궁금한 점을 문의하면 언제나 적극적으로 함께 답을 찾아주십니다. 그래서 단순히 지원기관이라기보다 새로운 농업의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귀농을 한 뒤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계절마다 달라지는 농장의 풍경 속에서 매일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고, 이루고 싶은 꿈도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앞으로 농장을 1만 평 규모까지 확대하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이 신선한 열대과일을 직접 보고 맛보면서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자연을 몸으로 배우는 놀이터가 되고, 어른들에게는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쉬어갈 수 있는 초록빛 휴식처가 되었으면 합니다.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작은 열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 그것이 트로피칼베이가 꿈꾸는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