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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오이 덩굴, 노란 오이 덩굴 얽혀 있고(靑瓜蔓接黃瓜蔓)/ 붉은 콩꽃, 하얀 콩꽃 서로 섞여 있네(紅豆花交白豆花)/ 바람이 늦여름 채소를 지킨다고 토란잎 펄럭이고(風護晩蔬翻芋葉)/ 비 맞은 햇약초 살찌고 생강의 싹 더 자라네(雨肥新藥長薑芽)…”1)
조선 전기의 문장가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늦여름의 어느 날 채소밭을 한 바퀴 돌며 본 풍경이 이러했다. 전근대의 농사는 내가 쥔 땅뙈기를 알뜰살뜰 최대한 활용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거의 모든 작물을 가꾸려 했다. 모든 작물을 자급자족해야 했던 시절의 농사가 이러했다. 그런 가운데 푸른 오이 덩굴이 더 익어 노각이 될 노란 오이 덩굴과 얽혀 있다. 콩꽃은 홍백으로 아롱져서 한창이다. 고마운 늦여름 바람 덕분에 토란 등 작물은 더 잘 자랄 테다. 비까지 알맞게 내린다면 그해의 약초도 생강도 더욱 쑥쑥 자랄 것이다. 조선 전기 여름 농사와 그 색채의 향연이 이러했다.
예나 지금이나 오이를 빼놓고는 여름 농사 풍경을 말하기 어렵다. 오이 농사가 사철 농사로 변한 지 오래지만 그래도 오이의 제철은 여름이다.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 이미 지난호에서 소개된 대로 정약용과 같은 학자 또한 “한여름 농사로는 오이만 한 것이 없다.”라고 했다.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는 오이밭을 따로 거름을 많이 주며 신경 써 관리해야 할 밭으로 여겼다.
농서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조선 전기에 전순의(全循義)가 쓴 농서 『산가요록(山家要錄)』 중 음식 및 저장법에서는 오이를 이용한 즙장(‘집장’의 원말) 만드는 법, 오이를 쓴 절임 만드는 법 세 가지, 오이지(瓜菹) 만드는 법 여섯 가지, 오이 저장법 세 가지를 싣고 있다. 이를 참고하면 음력 5~6월에 만든 오이지를 가을과 겨울이 되도록 먹도록 했고, 저장법에서는 특히 음력 8~9월이 되도록 끝까지 오이를 거두어 저장하도록 했으니 일상생활 속에서 그 자원의 가치가 오늘날에 견줄 바가 아니다. 오이지 만드는 방법도 이채롭다. 『산가요록』 속에 실린 오이지 만드는 법을 정리하면 이렇다.
① 푸른 오이(靑瓜)2)를 깨끗이 씻어 볕에 하루 말려 항아리에 담는다. 오이를 한 겹 깔 때마다 참기름을 뿌린다. 항아리가 다 차면 끓인 소금물을 식혀 붓고 할미꽃으로 덮는다.
② 푸른 오이를 1치쯤 길이로 잘라, 끓는 물에 잠깐 담가 푸른빛을 없앤다. 형개(荊芥)3)·초피나무의 잎·생강·마늘을 섞어 항아리에 함께 담고, 참기름과 달인 간장을 부어 하룻밤을 익혀 먹는다.
③ 위의 ②와 같은 방법이되 여뀌의 잎을 섞어 절인다.
④ 위의 ②와 같은 방법이되 동아의 꼭지·형개·여뀌의 잎이나 열매를 섞어 절인다.
⑤ 어린 오이(童子瓜)를 끓는 물에 잠깐 담가 푸른빛을 없앤다. 세 조각으로 잘라 간장에 재운다. 즉시 먹는데 매우 연하다.
⑥ 음력 5~6월에 난 오이를 씻어 물기를 빼고 볕에 말린다. 할미꽃의 뿌리와 줄기는 무르게 쪄 준비한다. 이상 두 가지를 한 켜씩 번갈아 차곡차곡 쌓아 항아리를 채운다. 여기다 끓인 소금물을 뜨거울 때 가득 붓는다. 항아리에 뚜껑을 덮고 진흙을 싸 발라 봉한다.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가을, 겨울에 먹는다.
사계절 따지는 못해도 사계절 먹자고 농사지어 간수하는 작물. 오이는 그런 작물이었다. 오이지 하나를 담글 때도 향신료, 향초, 참기름 따위를 아끼지 않을 만한 식료품이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농서 겸 농업경영서인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 또한 오이 농사를 자세히 기록했다. 심는 시기는 이렇단다.
“2월 상순이면 오이를 심어야 하니, 3월 상순은 그다음이고 4월 상순은 또 그다음이다(二月上旬種苽, 三月上旬次之, 四月上旬又次之).”
이는 당시까지 이어온 전통적인 농법의 설명이다. 여기에 『산림경제』가 쓰인 그때, 한반도의 보편적인 농법상의 심는 시기는 이러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방식은 이렇다. 오이는 서리를 두려워하니 3월 무렵 서리 기운이 없어진 다음에 심기 시작해야 한다(俗方. 苽畏霜, 三月間無霜氣, 然後始可種).”
오이란 참으로 일찍부터 농사를 준비하는 작물이다. 온 여름을 지나, 첫물부터 초가을 끝물까지, 따고 또 따도록 자라며 사람을 먹인 작물이다. 예부터 여름날 땀 흘려 지은 오이를 잘 갈무리해 가을, 겨울에도 먹으며 살아왔다. 이제 시설에 들어온 오이는 겨울나기 갈무리 걱정 없는 사계절 작물이 되었다. 한국인은 어느새 사계절 내내 싱싱한 오이가 없으면 섭섭한 인류가 되었다.
이후로도 여러 문서는 동아시아 공통의 오이 관련 지식과 정보와 한반도의 농법을 갈무리하고 있다. 고조리서는 오이에 잇닿은 별별 음식을 다채롭게 담고 있다. 이루 다 소개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난삽한 농법과 농업사 말씀보다는 오이에 잇닿은 일상생활의 감각을 보며 마무리할까 한다. 조선 후기 문인 이만수(李晩秀, 1752~1820)가 남긴 한 수4)다. 오이는 이토록 상쾌한 노래까지 낳으며 농업뿐만 아니라 문학까지 수놓았다.
“아침에도 오이 따고 저녁에도 오이 따는 까닭은(朝摘瓜暮摘瓜)/ 오이 덩굴이 날마다 자라기 때문이라(瓜蔓日以長)/ 덩굴 한 마디에 꽃 하나씩 피고(一節開一花)/ 꽃마다 꼭지 달리고 꼭지마다 열매 맺히지(花花作蔕蔕結瓜)/ 따면 맺히니 맺힌 열매 넘치게 많아(随摘随結結逾多)/ 광주리에 한가득 아침마다 허리에 이슬을 두르고 오이를 따지(滿筐朝朝帶露摘)/ 저마다 길쭉길쭉 단면은 원형에다 빛깔은 옥빛으로 빛나는데(个个橢圓玻璃碧)/ 작고 어린 놈은 나물 해 먹기 좋고(小瓜茹菜美可口)/ 큰 놈으로 김치 담가 먹으면 상쾌함이 가슴을 채운다네(大瓜沈菹爽入膈)”
| 01 | 『사가집(四佳集)』 중 『사가시집(四佳詩集)』에 실린 시 「순포(巡圃)」. |
| 02 | 전근대에는 노각이 오늘날의 푸른 오이 못지않게 중요했다. 그래서 노각, 곧 누른 황과(黃瓜)가 되기 전에 딴 오이는 따로 ‘청과(靑瓜)’로 일컬었다. |
| 03 | 농식품정보누리, 농촌진흥청 참조 |
| 04 | 『극원유고(屐園遺稿)』 1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