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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농업은 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양파, 토마토, 고추까지 주요 작물 종자를 수입에 의존해 온 탓에 국제 가격이 흔들릴 때마다 농가의 살림도 함께 휘청였다.
농촌진흥청이 스리랑카에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 센터를 열고 스리랑카 농업청과 손잡은 지 15년이 지난 지금, 종자의 자급 생산이 가능해졌다.
작은 종자에서 시작된 변화가 이제 국가 식량안보의 토대로 자라나고 있다.
인도 남동부 적도 부근에 있는 작은 도서국 스리랑카는 오랜 식민 지배와 26년에 걸친 내전을 겪으며 경제 기반이 크게 흔들렸다. 2009년 내전 종식 이후 정부는 국가 재건을 위해 대규모 인프라 개발에 나섰지만, 농업 부문의 성장은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스리랑카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전형적인 열대 기후 국가다. 5~10월에는 남서 계절풍이, 11~3월에는 북동 계절풍이 불며 많은 비를 뿌리고, 농사도 이 리듬에 맞춰 돌아간다. 하지만 이상기후로 가뭄과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잦아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농가들은 피해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농업 생산성 저하로 이어졌다.
게다가 스리랑카는 종자 자급 기반이 열약하다. 열대 기후를 바탕으로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하지만, 정작 주요 작물의 종자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왔다. 그러다 보니 국제 가격이 변동되거나 외환 사정이 나빠질 때마다 농업 생산성도 함께 흔들렸다. 경제 규모에 비해 외채와 정부부채가 높고 다른 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외화 보유액마저 현저히 낮은 스리랑카로선 종자 수입 자체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촌진흥청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이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2011년 캔디에 문을 연 KOPIA 스리랑카 센터는 스리랑카 농업청(DOA)과 협력해 종자 생산기술을 현지에 정착시키고, 농민이 직접 종자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써 왔다. 2012년부터 2025년까지 쌀, 콩, 녹두, 감자, 양파, 토마토, 고추, 버섯, 감귤 등 17개 협력 과제를 수행하며, 식량작물과 원예작물 전반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스리랑카는 양파 소비량이 많지만 생산 기반이 취약해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해 왔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생산량까지 불안정해지면서 안정적인 종자 생산 체계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KOPIA 스리랑카 센터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양파 종자의 국내 생산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시범마을을 조성했다. 양파 종자 생산용 비가림 하우스 800동을 설치하고, 왕겨탄과 퇴비를 혼용해 토양 비옥도를 개선함으로써 종자 생산성을 높였다. 그 결과, 헥타르당 600kg 수준이던 양파 종자 생산성이 1,000~1,200kg으로 크게 늘었다.
또한 건조지역에서도 양파를 연간 두 번 재배할 수 있는 자구(dry-set) 재배기술을 개발했다. 여기에 유기질 비료와 왕겨를 활용한 토양 개량 기술과 농작물이 자라는 토양을 볏짚으로 덮어 수분을 유지하는 멀칭(mulching) 기술도 함께 보급했다. 이를 통해 양파 생산성은 헥타르당 7,700kg에서 31,500kg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2021년에는 3년간 농가 150곳이 참여하는 양파 전문생산단지 6개소를 조성해 참여 농가에 양파 종자와 비료, 병해충 예방 약제를 지원하고, 현장 교육도 실시했다. 종자 생산부터 재배기술 확산까지 이어지는 지원 체계를 구축하며 스리랑카의 양파 자급 기반을 한층 강화했다.
관광산업이 발달한 스리랑카는 오렌지를 비롯한 감귤류 소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 생산 기반이 부족해 상당량을 수입하고 있다. 이에 KOPIA 스리랑카 센터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감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농가 실증사업을 추진했다.
2018년 1단계 사업에서는 묘목 식재를 비롯해 수형 교정, 전정, 병해충 관리, 멀칭, 과일 솎기 등 감귤 재배의 핵심 기술 6가지를 하나의 패키지로 개발했다. 이어 2021년 2단계 사업에서는 400개 농가가 참여하는 감귤 클러스터 2곳을 조성하고, 접목이 이루어진 묘목 2만 4,000주를 공급해 우량 묘목의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마련했다.
KOPIA 스리랑카 센터는 앞으로도 농가 교육과 우량 묘목 공급을 지속해 감귤 재배기술의 현지 정착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감귤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인 국내 생산 기반을 구축하는 데 힘을 보탤 예정이다.
토마토는 스리랑카에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대표적인 채소다. 관광산업과 식품가공산업의 성장으로 소비는 계속 늘고 있지만, 다른 작물과 마찬가지로 종자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왔다. 국제 종자 가격이 오를 때마다 농가의 생산비 부담도 함께 커지는 구조다.
이에 KOPIA 스리랑카 센터는 스리랑카 농업청 원예연구소와 협력해, 현지 환경에 적합한 고품질 다수확 토마토 F1 품종의 종자 생산체계 구축에 나섰다. F1은 두 품종을 교배해 만든 1세대 잡종 품종을 뜻하며, 부모 세대의 장점을 모아 양성된 자식 세대로 이해하면 된다. 품질이 균일하고 병해충에 강한 것이 특징이다.
KOPIA 스리랑카 센터는 2023년부터 토마토 교배종자 생산을 위한 망실하우스 20동을 농업청 산하 연구소와 농가에 설치하고, 점적관수 시설과 환풍기, 안개분무장치 등을 구축해 종자 생산에 적합한 생육 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지도 공무원과 농업인을 대상으로 채종기술과 재배관리기술 교육을 실시했으며, 2024년까지 총 236명이 전문교육을 이수했다.
이번 사업은 단순히 시설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종자 생산기술을 현지에 정착시켜 농민이 직접 우수 종자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를 통해 토마토 종자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안정적인 종자 공급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는 풋고추는 자급하고 있지만, 말린 고추는 국내 소비량의 9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매년 약 1억 1천만 달러의 막대한 외화를 말린 고추 수입에 지출하고 있다. KOPIA 스리랑카 센터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추 교배종자의 생산 확대와 보급을 위한 기술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4년에는 고추 교배종자 생산용 망실하우스 20동을 설치하고, 병해충에 강한 품종인 ‘MICH HY-01’의 종자 생산을 확대했다. 생산된 종자는 이듬해 전국 주요 지역 10곳의 농가 2,000곳에 보급돼 고추 생산량 증대는 물론 품질 향상에도 기여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KOPIA 스리랑카 센터는 앞으로 건조시설을 구축해 말린 고추의 생산 기반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종자 생산부터 건조까지 연계되는 고효율 농업 모델 구축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있다.
외환위기로 수입 종자 확보가 어려웠던 스리랑카에서 종자 자급은 단순한 농업기술이 아니라 국가의 식량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그렇기에 KOPIA 스리랑카 센터의 성과는 단순히 종자를 몇 봉지 더 생산하는 데 있지 않다. 종자는 농업의 시작이다. 씨앗 하나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생산비를 줄이는 것을 넘어 식량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KOPIA 스리랑카 센터가 스리랑카에 심은 것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