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26 Vol.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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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어디까지 변신할까?

가공으로 더해지는 맛과 가치

익숙한 농산물에 품종 개발과 가공기술, 소비자의 필요를 읽은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우리 식탁에도 새로운 선택지가 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가공에 알맞은 품종과 기술을 개발하고, 농산물종합가공센터를 통해 농업인의 아이디어가 실제 상품과 시장으로 이어지도록 돕고 있다.
농촌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가는 농산물 가공식품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글 장유정 ㆍ 자료 제공 및 검토 농촌자원과 류은혜 농촌지도사 ㆍ 사진 제공 국립식량과학원, 영동군청



달라진 식탁, 농산물의 변신을 이끌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지고 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원료와 품질을 믿을 수 있고, 영양까지 챙길 수 있는 식품 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증가, 고령화도 이런 변화를 앞당겼다. 아이에게는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간식이 필요하고, 고령층에게는 씹고 삼키기 편한 식품이 필요하다. 이처럼 나이와 생활 방식에 따라 원하는 식품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농산물 가공식품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농산물 가공식품은 쌀과 콩, 과일, 채소 등의 농산물을 씻고, 갈고, 가열하거나 건조·발효해 만든 식품이다. 과거에는 농산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말리거나 절이는 데 가공의 의미가 컸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농산물의 맛과 특징을 살리면서 더 쉽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렇다고 농산물을 가공하면 무조건 영양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가공 과정에서 일부 영양성분이 줄어들 수도 있고, 당이나 나트륨을 많이 넣으면 원료가 가진 장점이 줄어들 수 있다. 그래서 최근 농산물 가공은 단순히 먹기 편한 식품을 만드는 데서 나아가, 원료의 특성을 살리면서 건강과 편의까지 함께 챙기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소비 흐름에서도 이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2025년 가구당 월평균 가공식품 지출액은 27만 500원으로 전년보다 1.8% 늘었다. 전체 식품비에서 가공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 줄었지만, 건강보조식품 지출은 10.8%, 커피와 차는 6% 증가했다. 모든 가공식품을 똑같이 많이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편의 등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제품을 고르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달라진 식탁의 요구를 읽고 우리 농산물에 새로운 맛과 쓰임을 더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농산물 가공식품이 변하고 있는 방향이다.

가공을 만나 더 다양해지는 농산물

농산물 가공식품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과일을 갈거나 짜서 만든 주스와 착즙액, 식혜와 차 같은 음료부터 곡물가루와 선식, 채소·과일 분말, 말린 과일과 건나물, 채소칩까지 형태도 제각각이다. 과일잼과 청, 조청, 장류, 드레싱 같은 소스류가 있는가 하면 쌀과자와 고구마빵, 감자떡, 쿠키, 한과, 젤리처럼 간식으로 즐기는 식품도 있다. 죽과 수프, 국수, 떡, 즉석밥, 밀키트처럼 한 끼를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제품도 농산물 가공의 한 영역이다.

가공 방법도 다양하다. 농산물을 말려 수분을 줄이면 보관기간을 늘리면서 새로운 맛과 식감을 만들 수 있고, 동결건조 기술을 이용하면 과일이나 채소의 형태와 향을 비교적 잘 살릴 수 있다. 김치와 장아찌, 피클, 된장, 고추장, 청국장처럼 절이거나 발효시키는 방식도 오랫동안 이어져 온 대표적인 농산물 가공법이다. 참깨와 들깨, 콩에서는 기름을 짜고, 과일과 약용작물은 농축액이나 즙, 추출액으로 만들기도 한다. 농산물과 축산물을 함께 활용한 요구르트와 치즈, 육포 같은 제품까지 포함하면 가공식품의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최근에는 단순히 농산물을 오래 보관하거나 먹기 편하게 만드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소비자가 원하는 맛과 식감, 조리 방법에 맞춰 가공기술을 개발하고, 처음부터 가공에 알맞은 품종을 따로 개발하기도 한다.

우리의 주식인 쌀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밥으로 먹는 쌀의 소비는 줄고 있지만, 쌀빵과 쌀국수, 쌀과자처럼 새로 운 형태로 즐기려는 수요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 멥쌀은 단단해 가루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물에 불린 뒤 갈아야 해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가루쌀 ‘바로미2’는 이런 불편을 줄인 가공 전용 품종이다. 쌀알의 전분 구조가 일반 쌀보다 성글어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가루로 만들 수 있고, 기존 밀가루 제분설비도 활용할 수 있다. 가루쌀은 빵과 라면, 과자, 케이크, 고추장 등 다양한 식품에 활용되고 있다. 쌀의 쓰임이 밥에서 빵과 면, 간식으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재배 안정성을 높인 후속 품종 ‘바로미4’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국산 콩도 새로운 식물성 단백질 식품으로 변신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고단백 콩 ‘새단백’에 버섯과 식용곤충 고소애를 더해 오래 끓여도 쉽게 풀어지지 않는 대체식품 소재를 개발했다. 햄버거 패티뿐 아니라 육개장과 장조림, 떡국처럼 오래 끓이는 한식에도 활용할 수 있다.

국산 콩 ‘대원’으로 만든 탈지대두분말에 쌀가루를 넣은 식물성 단백질 식품도 개발됐다. 닭가슴살처럼 결이 촘촘하고 탄력이 있어 샐러드와 햄버거 패티, 불고기용 식품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익숙한 콩이 가공기술을 만나 새로운 단백질 식품으로 바뀐 사례다.

감자칩 역시 아무 감자로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분이 많고, 튀긴 뒤 색이 밝으며 바삭한 식감을 내는 감자가 필요하다. 이런 특징을 갖춘 ‘고운’과 ‘새봉’ 같은 칩용 감자 품종이 개발돼 생산업체에 보급되고 있다.

이처럼 농산물 가공식품 연구는 공장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맛과 식감, 쓰임을 생각해 그에 맞는 농 산물 품종을 만드는 밭에서부터 시작된다.

농부의 아이디어가 상품이 되기까지

농업인이 직접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세척·추출·살균·포장에 필요한 장비를 갖춰야 하고, 제조 방법과 제품 검사, 식품 표시사항도 챙겨야 한다. 어떤 형태의 제품으로 만들지 정하고 실제 판매까지 이어가기 위해서는 관련 교육과 인허가 절차도 필요하다. 소규모 농가가 이 모든 과정을 혼자 준비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 돕기 위해 마련된 곳이 농산물종합가공센터다. 농산물종합가공센터는 농업인의 가공 창업과 상품화를 지원한다. 지역에 따라 운영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가공교육과 창업 상담, 공동 가공장비 활용, 시제품 생산, 제품 검사와 품질관리 등을 지원한다. 단순히 장비를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농업인의 아이디어를 실제 판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발전시키는 창업 지원 공간인 셈이다.

진천군 농산물가공지원관에서 개발된 발효 흑삼 키즈 음료 ‘진천네 히어로’는 지역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친숙한 제품으로 바꾼 사례다. 흑삼을 어린이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음료 형태로 개발했고, 관련 기술은 지역 업체인 맹여사푸드에 이전돼 생산·유통으로 이어졌다. 진천군은 이 제품을 포함한 가공상품 개발 성과를 인정받아 2025년 농촌진흥청 농산물종합가공센터 히트상품 개발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대구 달성군의 ‘젤리하트 자두잼’은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자두 품종 ‘젤리하트’의 첫 출하 과정에서 발생한 B품 자두를 활용해 잼으로 만들었다. 달성군 농산물가공기술지원센터는 자두 과육의 식감을 살린 제품으로 개발해 농가 소득을 보완할 수 있는 상품으로 연결했다. ‘젤리하트 자두잼’과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비슬산 사계빵’은 2025년 농촌진흥청 농산물종합가공센터 히트상품 개발 경진대회 우수상을 받았다.

강원 정선에서는 곤드레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공식품으로 개발했다. 해비즌협동조합의 ‘영양 곤드레톡’은 곤드레에 밤과 표고버섯, 대추, 더덕 등을 더한 제품이다. 정선군은 옥수수와 감자를 활용한 ‘정선옥수수감자톡’, 곤드레와 채소를 활용한 ‘동결건조 곤드레잡채’ 등도 개발했으며, 이들 제품으로 2025년 농촌진흥청 농산물종합가공센터 히트상품 개발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농산물 가공식품

농산물 가공식품이란 농산물을 원료로 세척·분쇄·가열·건조·발효 등의 가공 과정을 거쳐 만든 식품을 말한다. 농산물을 오래 보관하기 쉽게 하거나 먹기 편한 형태로 바꾸고, 원료의 맛과 특성을 살려 활용 범위를 넓힌다. 최근에는 건강과 편의, 다양한 소비자의 생활 방식에 맞춘 제품으로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가공을 넘어 체험과 관광으로

최근에는 농산물 가공이 제품 생산에만 머물지 않는다. 농산물의 생산과 가공, 유통·판매에 체험과 관광까지 더한 6차산업으로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거창사과는 사과 농가와 산지유통시설, 가공업체, 체험·관광시설을 하나로 연결했다. 농가에서 생산한 사과는 선별해 판매하기도 하고, 음료와 디저트 등 다양한 가공상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거창사과테마파크에서는 사과 재배와 품종을 배우고, 주변 체험시설에서는 생태·농촌 체험과 숙박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연계는 방문객과 매출 증가로도 이어졌다. 2024년 거창사과테마파크 방문객은 전년보다 14%, 천적생태과학관 방문객은 64% 증가했다. 거창사과푸드코트의 매출이익과 거창 푸드종합센터의 순이익도 크게 늘었다.

충북 영동은 지역 특산물인 포도를 와인산업과 관광으로 연결했다. 농가에서 재배한 포도를 와인으로 만들고, 시음과 체험, 축제, 판매까지 이어지도록 한 것이다. 2024년 영동 와인축제 에는 약 10만 명, 포도축제에는 23만 8천 명이 방문했다.

지역의 와인산업을 키우기 위한 기술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충북농업기술원 와인연구소는 토종 효모와 무가당·저알코올 와 인 제조기술 등을 개발해 지역 와이너리에 보급하고 있다. 영동군도 교육과 컨설팅, 박람회 참가 등을 지원하며 생산부터 가공, 상품화, 판매까지 이어지는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지역 농산물은 이제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가공과 판매, 체험과 관광을 연결하는 지역 콘텐츠로 성장하고 있다. 농업인에게는 새로운 판로와 소득을 만들고, 소비자에게는 먹고 배우고 머무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연구실에서 식탁까지, 농산물의 새로운 시장을 열다

새로운 품종과 가공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곧바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맛과 식감은 물론 제품의 양과 포장, 가격, 어디에서 판매할지까지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아야 실제 상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농촌진흥청은 국산 콩 대체식품과 고구마말랭이, 보리식혜 등 새롭게 개발한 제품을 유통업체 상품기획자에게 선보이고 시장 가능성을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는 원료의 안전성과 맛, 영 양뿐 아니라 포장과 제품 설명, 적당한 용량, 판매 방식까지 함께 살폈다. 국산 원료를 사용했다는 사실만 강조해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건강, 식물성, 무첨가 등 제품의 장점을 소비자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보여주고, 급식과 식자재 시장, 온라인몰, 홈쇼핑 등 제품에 맞는 판매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농산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분명 큰 장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소비자가 계속 제품을 찾는 것은 아니다. 맛과 품질 이 좋아야 하고, 먹기 편해야 하며, 용량과 가격도 알맞아야 한 다. 포장만 보아도 어떤 제품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농산물에 연구자의 기술과 농업인의 아이디어를 더하고, 소비자의 생활에 맞는 새로운 쓰임을 찾아낼 때 농산물은 오래 사랑받는 상품이 될 수 있다.

농산물 가공식품은 농업인의 소득을 높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소비자의 필요를 반영한 연구와 가공기술이 우리 농산물을 새로운 상품으로 만들고, 소비자의 선택은 다시 농가의 성장과 지역의 일자리,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이어진다.

밭에서 수확한 쌀과 콩, 과일과 채소가 빵과 음료, 새로운 먹거리로 변해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다시 농촌에 활력을 더한다. 밭에서 식탁으로, 다시 농촌으로 이어지는 이 선순환이 우리 농산물이 만들어가는 가장 맛있는 진화다.






Vol.253
2026년 0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