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26 Vol.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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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서 거둔 수확물로, 정선의 맛을 잇다

농산물은 수확하는 순간보다 소비되는 순간 더 큰 가치를 만든다.
김용수 해비즌협동조합 대표는 정선의 농산물을 누구나 쉽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농산물 가공식품으로 개발하며 지역의 맛을 일상으로 확장하고 있다.
가공을 통해 농산물의 가능성을 넓혀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글 김지현 ㆍ 사진 이준우 ㆍ 추천 및 검토 농촌자원과 류은혜 농촌지도사

밥 한 그릇에 담긴 정선

밥솥 뚜껑을 여는 순간 은은한 곤드레 향이 퍼진다. 씻은 쌀 위에 스틱 하나를 ‘톡’ 넣었을 뿐인데 어느새 밥상에는 정선의 향이 오른다. 한때는 물에 불리고 삶는 과정을 거쳐야만 맛볼 수 있었던 곤드레가 이제는 집에서도 손쉽게 한 끼 식사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간편한 식사일 수 있지만, 김용수 해비즌협동조합 대표에게는 정선 농산물의 가치를 더 오래 이어가는 방법이다.

정선을 찾은 관광객들은 돌아가는 길에 곤드레와 감자, 옥수수 같은 지역 농산물을 한 아름 사 간다. 여행지에서 맛본 음식을 집에서도 다시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언제나 식탁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리법이 익숙하지 않거나 손질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냉장고 한편에 남겨지는 농산물도 적지 않다.

“좋은 농산물을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고민은 농산물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는 데서 출발했다. 오래 보관만 하기 위한 가공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조리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가공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정선 곤드레톡’, ‘정선 시래기톡’, ‘옥수수감자톡’ 등 이른바 ‘밥솥에 톡톡’ 시리즈다. 이름처럼 씻은 쌀에 한 포만 넣으면 정선의 맛을 집에서도 손쉽게 즐길 수 있다.

“정선에서 먹었던 그 맛을 집에서도 다시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소비자 후기를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김용수 대표에게 농산물 가공식품은 편리함만을 위한 제품이 아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지역의 맛을 일상으로 이어주고, 소비자가 정선을 한 번 더 기억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농산물의 모습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지역의 경험을 오래 이어가는 일에 가깝다.

사람들의 식탁에서 답을 찾다

김용수 대표는 새로운 제품을 구상할 때 연구실보다 마트와 시장을 더 자주 찾는다. 소비자들이 어떤 상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지, 어떤 크기의 제품을 집어 드는지, 어떤 재료를 부담 없이 선택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본다. 그에게 시장은 소비자의 식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봐야 해요. 시장의 흐름을 읽어야 다음 제품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의 시선은 늘 ‘먹는 사람’에게 향해 있다. 아무리 좋은 농산물이라도 손이 많이 가고 조리가 어렵다면 소비자는 쉽게 선택하지 않는다. 반대로 간편하면서도 건강까지 생각한 제품이라면 바쁜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식탁에 오른다.

실제로 해비즌협동조합의 제품들은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곤드레를 물에 불리고 삶는 번거로움을 줄인 ‘곤드레톡’을 비롯해 ‘시래기톡’, ‘옥수수감자톡’ 등은 씻은 쌀에 한 포를 넣기만 하면 손쉽게 밥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든 간편조리식품이다. 마늘과 대파, 양파, 표고버섯을 동결건조한 ‘간편톡’ 역시 조리 때마다 재료를 손질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개발되었다.

최근 농산물 가공식품은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간편하면서도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가 많아졌고, 농산물 역시 이러한 변화에 맞춰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김용수 대표는 이러한 흐름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체감하고 있다. 과거에는 원물을 얼마나 좋은 가격에 판매하느냐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소비자의 생활방식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일이 경쟁력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또 다른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밥 한 그릇이 완성됐다면 그 곁에 함께할 찌개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정선의 곤드레와 애호박을 활용한 된장찌개를 동결건조 블록 형태로 개발하고 있다. 용기(냄비)에 물을 붓고 블록 하나 넣어 2~3분 끓여 내면 맛있는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밥상 위에 정선을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하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새로운 제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확한 농산물에 한 번 더 가치를 더하다

수확이 끝나면 소비도 함께 줄던 농산물은 가공을 거치면서 계절을 벗어났다. 정선의 곤드레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5월부터 7월까지 수확하는 곤드레는 저장 기간이 짧아 수확 직후 삶아 냉동 보관해야 연중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언제든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농산물 가공식품이 만들어낸 가장 큰 변화는 생산 시기가 아니라 소비의 시간을 늘렸다는 점이다.

김용수 대표가 곤드레톡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곤드레는 연간 약 25톤. 처음에는 직접 재배한 농산물만으로 제품을 만들었지만 사업이 커지면서 혼자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지금은 지역 농업인들이 재배한 곤드레를 농협을 통해 꾸준히 수매해 원료로 사용한다. 소비자가 제품 하나를 구입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정선 농업인의 판로를 넓히는 일로 이어진다.

농산물 가공식품은 흔히 원물에 새로운 형태를 입힌 제품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김용수 대표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소비자의 식탁에 한 번 더 오르고, 지역 농산물이 한 번 더 선택될 기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공의 진짜 가치라는 것이다. 여행지에서만 소비되던 농산물이 일상의 한 끼로 이어질 때, 지역의 맛도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혼자였던 생각, 함께 만든 상품

김용수 대표는 지금도 사업을 처음 시작하던 때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꺼낸다. 정선의 농산물을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것을 하나의 상품으로 완성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어떤 공정을 거쳐야 하는지, 제품의 품질은 어떻게 유지할지, 시장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소비자와 만나야 하는지 혼자서는 쉽게 답을 찾기 어려웠다.

“가공을 처음 시작하는 농업인은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인허가부터 제품 개발, 생산, 판로까지 하나하나 함께 고민해 주셨습니다. 혼자였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 곁에는 정선군농산물종합가공센터가 있었다. 제품 기획부터 시제품 제작, 생산, 판로까지 전 과정을 함께하며 농업인의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상품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김영수 정선군농업기술센터 연구개발팀장은 “좋은 농산물이 곧바로 좋은 상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제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농업인이 직접 개발 과정에 참여합니다. 주원료를 정하고, 소비자가 어떻게 먹을지 함께 고민하며 완성도를 높여갑니다.”

상품을 만드는 과정은 소비자와 만나는 방법까지 이어진다. 정선군농산물종합가공센터는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제품 사진 촬영과 라이브커머스 교육도 운영한다. 농업인들이 직접 상품을 촬영하고 온라인 판매를 경험하면서 좋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법까지 함께 익히는 것이다. 김영수 팀장은 “상품은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때 비로소 경쟁력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김용수 대표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밥솥에 톡톡’시리즈를 완성해 왔다. 새로운 제품을 구상할 때마다 그가 되새기는 질문도 여전히 같다. ‘어떻게 하면 정선의 농산물을 더 쉽고 맛있게 즐길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오늘도 또 하나의 농산물 가공식품이 되어, 정선의 맛을 더 많은 사람의 식탁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Vol.253
2026년 0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