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26 Vol.253

September 2026 Vol.253
그린 Special > 세계로 간 농업혁신

현지에 맞는 품종과 재배기술로 농업의 자립 기반을 키우다

에티오피아 고원에 심은 K-농업의 씨앗

고원지대가 많은 에티오피아는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불규칙한 비와 낮은 토양 생산성으로 농업에 어려움이 크다.
KOPIA(이하 코피아) 에티오피아센터는 현지에 맞는 우량 품종과 종자 생산기술을 보급하고, 친환경 토양 관리와 복합영농을 지원하며 농업 생산 기반을 높이고 있다.

글 장유정 ㆍ 자료 제공 및 검토 국외농업기술과 이종안 농업연구사, 강수빈 국제협력요원

고원 농업에 해법을 더하다

에티오피아는 전체 인구의 약 62%가 농업에 종사하고, 농업이 국내총생산의 32%를 차지할 만큼 농업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해발 약 2,300m에 있으며, 국토 대부분이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선선한 고원지대는 다양한 채소 생산과 양계에 유리하다. 하지만 농사는 비가 언제, 얼마나 내리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파종할 때 비가 오지 않으면 씨앗이 제대로 싹트지 않아 다시 심어야 하고, 그만큼 종자 비용도 늘어난다. 반대로 비가 너무 일찍 오면 땅이 젖어 밭을 갈기 어려워 파종 시기가 늦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흐린 날이 길어져 햇빛이 부족하거나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일도 잦아졌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밭에서는 감자와 양파가 썩고, 토마토밭이 물에 잠기기도 한다. 우박으로 작물의 상품성이 떨어지는 피해도 발생한다. 농촌진흥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 코피아 에티오피아센터를 열었다. 이후 현지 연구기관과 함께 에티오피아의 기후와 농업 여건에 맞는 품종과 재배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고 있다.

토마토 수확 현장
양파 종자 수확 농지 방문

고부가가치 토마토로 생산성을 높이다

토마토는 양파와 함께 에티오피아 음식에 널리 쓰이는 주요 채소다. 판매 가치가 높아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되지만 우량 품종과 재배기술이 부족해 생산성은 낮은 편이다. 에티오피아의 토마토 평균 생산량은 헥타르당 약 6.5톤으로, 세계 평균인 37톤의 5분의 1 수준이다. 병해충에 약한 품종과 비싼 개량 종자, 부족한 재배기술에 최근의 집중호우와 우박 피해까지 겹치면서 생산량을 높이기 쉽지 않았다.

코피아 에티오피아센터는 상품성이 높고 병해충에도 강한 토마토 품종을 도입해 현지 적응성을 평가했다. 무한생육형 토마토 ‘AWR FT 4-1’과 방울토마토 ‘원홍 No.1’, ‘원홍 No.3’이 대표적이다. 접목과 지주 재배기술도 함께 보급했다. 처음부터 새로운 기술이 쉽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일부 농업인과 연구진은 익숙한 재배 방식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센터는 기존 방식과 새로운 기술을 같은 조건에서 직접 비교해 재배했다. 생육 상태와 수확량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한 농업인들은 점차 코피아의 재배 방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현장 실증 결과도 뚜렷했다. ‘AWR FT 4-1’은 헥타르당 35.88톤을 수확해 기존 품종보다 생산량이 최대 2.7배 늘었다. ‘원홍 No.1’과 ‘원홍 No.3’도 각각 헥타르당 25.6톤과 25.5톤을 기록했다.

처음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방울토마토도 품종 등록 2년 뒤 직접 재배하겠다는 농업인이 나타났다. 새로운 고부가가치 작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토양개선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베초지역 비쇼프투 연구센터

토마토와 양파 종자,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다

좋은 품종을 보급해도 해마다 비싼 종자를 외부에서 사야 한다면 성과를 오래 이어가기 어렵다. 그래서 코피아 에티오피아센터는 품종 보급과 함께 현지에서 종자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센터는 토마토 종자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스크린하우스와 종자 증식시설을 마련했다. 농업인과 지역 전문가를 대상으로 종자 생산과 품종 관리기술도 교육했다. 그 결과 2024년에는 토마토 종자 35kg을 생산해 농가와 지역 전문가 254명에게 보급하고 관련 기술을 전수했다.

양파 역시 중요한 작물이다. 에티오피아에서 고추와 케일 다음으로 재배 면적이 넓지만, 병해충에 약하고 재배와 저장이 까다롭다. 특히 비가 많이 내리면 생산량이 줄고 저장성도 떨어진다. 한때 양파 가격이 평소보다 세 배 이상 올라 현지 직원이 생일선물로 양파를 사 달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코피아 에티오피아센터는 방충망을 갖춘 망실과 노지 재배를 함께 활용해 양파 종자 생산기술을 구축했다. 2024년에는 약 125kg의 양파 종자를 생산해 농가에 보급했다. 우량 종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수확량을 높일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교배종 육성 중인 고추밭

친환경 토양 관리로 땅의 힘을 되살리다

에티오피아 농업의 낮은 생산성은 품종과 재배기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같은 땅에서 농사를 짓고 비료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면서 토양이 산성화되고 유기물이 줄어든 농경지가 많았다. 코피아 에티오피아센터는 석회와 유기질 퇴비를 이용해 토양을 개선하는 기술을 현지 농가에 적용했다. 그 결과 토양의 수소이온농도, 즉 pH는 4.9에서 5.1로 높아졌고, 교환성 산도는 낮아졌다. 총질소와 인, 유기탄소 등 토양의 영양분 함량도 늘었다. 토양 개량기술을 적용한 밭에서는 에티오피아 케일을 비롯한 채소 생산량과 농가 순수익이 늘었다.

농사에서는 물을 공급하는 것만큼 잘 빠지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가 불규칙하게 내리는 상황에서는 관개시설을 늘리는 동시에 작물과 토양에 맞는 배수 관리도 필요하다. 지력이 떨어진 땅에 물까지 지나치게 많으면 병해가 생기고 작물의 저장성도 낮아질 수 있다. 센터는 앞으로 토양의 산도와 양분 상태, 농경지의 배수 여건, 작물별 특성을 함께 고려한 재배기술을 확대할 계획이다.


여성 농업인과 함께 키우는 복합영농

에티오피아에서 여성은 채소 재배와 수확, 가축 사육 등 농업 현장의 많은 일을 맡고 있다. 하지만 우량 종자와 농자재를 구하기 어렵고, 채소 재배나 양계 기술을 배울 기회도 충분하지 않았다. 코피아 에티오피아센터는 여성농업인을 대상으로 마늘·토마토·고추·샬롯·배추·무 등의 종자 증식과 재배기술, 양계 사양기술을 보급했다. 에티오피아 농업연구청과 함께한 여성농업인 참여형 마늘 생산 실증사업에서는 종자 증식부터 수확까지 단계별로 기술을 교육했다. 그 결과 참여 농가의 소득은 기존보다 약 6배까지 증가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3개 마을의 여성 농업인 300여 명을 대상으로 채소와 양계를 결합한 복합영농 시범마을 사업(2019~2021년)도 추진했다.

채소를 재배해 판매하면서 달걀과 닭도 함께 판매해 소득원을 다양하게 만든 것이다. 한 작물의 작황이나 가격에만 의존해야 하는 위험도 줄일 수 있었다.

사업이 끝난 뒤에도 농업인들이 스스로 기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을 지도자를 양성하고, 초청 연수와 현지 영농교육도 함께 진행했다.

2019년 에티오피아 시범마을 출범식
2017년 자립형 소득 증대 여성 농업인 육성을 위한 현장평가회

현장에서 확인하며 기술의 신뢰를 쌓다

코피아 에티오피아센터는 한국에서 개발한 기술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지 연구기관과 함께 품종이 에티오피아 환경에 잘 맞는지 확인하고, 농가의 밭에서 기존 방식과 새로운 기술을 직접 비교한다. 효과가 확인된 기술은 교육을 통해 농업인들에게 확산한다.

중요한 것은 ‘최신 기술’ 자체가 아니다. 한국 농업이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쌓아온 현장 경험 가운데 에티오피아 농업인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기술을 찾아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센터는 일방적으로 기술을 전달하기보다 현지 기관과 충분히 논의하고, 농업인들과 신뢰를 쌓으며 함께 해법을 찾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토마토 품종과 접목기술, 양파 종자 생산, 친환경 토양 관리, 여성 농업인의 복합영농은 서로 다른 사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목표는 하나다. 농업인이 필요한 종자를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고, 재배기술을 익혀 다음 농사를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KOPIA 에티오피아센터가 에티오피아 고원에 심고 있는 것은 단순한 농업기술이 아니라, 현지 농업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다.




Vol.253
2026년 09월호